열하일기, 장수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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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열하일기 파헤치기
① 북학사상
② 연암 박지원(인품, 관점)
It's different! 종래의 연행 인사들과 다른 연암 박지원.
③ 표현상 특징
It's different! 종래의 연행록들과 다른 “열하일기”
④ 열하일기의 소설적 특징

3. 결론

본문내용

한 지역의 자연 풍경에 관해서는 필요한 최소한의 기술에 그치고 있다. 이에 비할 때 열하일기의 도처에서 연암이 연로의 이국적인 자연 풍경과 기상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열하일기에 빈번히 나타나 있는 이러한 풍경과 일기의 묘사는 이역만리의 낯선 땅을 여행하는 실감을 자아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며, 때로는 여행도상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의 배경으로서도 훌륭한 기능을 하고 있다.
<성경잡지 - p.190~191> 새벽에 일어나 아침 세수를 마치니 몹시 고단했다. 달이 막 지니 온 하늘에 총총한 별들이 모두 깜박거리고 마을 닭이 번갈아 울어댄다. 몇 리를 못 가서 안개가 뽀얗게 끼어 큰 들이 삽시간에 수은 바다를 이루었다. 의주 장사꾼 한 떼가 서로 지껄이며 지나가는데, 그 모습이 몽롱하여 마치 꿈속에서 기이한 글을 읽는 것처럼 분명하지는 않으나 그 영검스러운 경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조금 뒤에 하늘빛이 환해지며, 길가에 늘어선 수많은 버드나무에서 매미가 한꺼번에 울기 시작한다. 저들이 저처럼 알리지 않아도 이미 낮 더위가 몹시 뜨거운 줄은 알고 있다. 들판에 가득했던 안개가 점차 걷히고 먼 마을 사당 앞에 세운 깃발이 마치 돛대처럼 보인다. 동쪽 하늘을 돌아보니 붉은 구름이 용솟음치며, 붉은 해가 옥수수 밭 저편에서 솟을 듯 말 듯 천천히 온 요동벌이 꽉 차게 떠오른다. 땅 이에 오가는 말이며 수레 나무 집 등 마치 털끝같이 자잘하게 보이는 것들이 모두 햇살을 받기 시작하였다.
→ 여기에서 연암은 북중국의 여름날 농촌 풍경을 대단히 생생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선명한 이미지들을 절묘하게 구사함으로써, 연암은 중국의 광활한 대지와 무더운 여름 날씨, 그리고 짙은 안개와 폭염 속을 강행군하는 조선 사행의 고충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3. 결론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의 대문호이자, 실학의 일파인 북학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연암 박지원의 문학을 대표하는 저작으로써, 조선 시대 한문학 유산 가운데서 근대 지향적인 성격이 가장 뚜렷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청조 중국의 현실에 대한 연암의 견문과, 이에 기초하여 전개된 그의 북학론으로 그 내용을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연암은 남다른 열의와 식견을 가지고 청조 문명과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를 관찰하였다. 상업을 중심으로 한 청조 문물을 발달상을 다각도로 증언하면서, 이로부터 조선의 낙후된 경제 현실을 타개할 구체적인 방안들을 끌어내고 있다. 열하일기에 제시된 연암의 북학론은 청조 문물의 적극 수용을 근간으로 한 부국강병책으로써, 청은 비록 오랑캐이나 중화문명을 계승, 보존하고 있는 그 문물을 보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화이변별의 기준으로 인종적, 지리적 측면보다 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문화 중심적 화이관을 전제하고 있는 점에서, 그의 북학론은 소중화 주의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연암의 북학론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연암 특유의 사유구조로 인해, 다른 북학파 인사들의 주장에서 보기 어려운 커다란 계몽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연암은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 선입견과 감각에 좌우되지 않는 주체적 사고와, 광대무변하고 변화무쌍한 현실 세계를 편견 없이 탐구하려는 개방적 자세를 강조한다. 또한 그는 관점에 따른 인식의 상대성을 철저히 자각한 위에서, 관점의 대담한 전환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사고로부터 탈피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열하일기는 북학파의 사회개혁 사상을 집대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채로운 표현 기법과 특유의 사유 구조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열하일기에도 그 나름의 한계 내지 문제점들이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우선 연암은 조선 사행에 참여했던 역대의 모든 연행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지정된 조공로를 따라 북경에 이르는 연변의 극히 제한된 지역밖에는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청조 중국의 현실을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는 없었다. 또한 연암은 청조의 선진 문물 수용과 적극적인 해외무역 등을 통해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타개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이러한 사회개혁의 주체로서는 실질적 능력을 갖춘 역관이나 상인 계층의 참여를 배제한 채 오로지 각성된 사대부만을 상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와 아울러 그는 하층 민중들의 삶을 자못 생생하고도 온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사회 개혁의 주체로까지 성장할 수 있는 세력으로 인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진보적 학설 역시 기발한 주장에 머물고 있을 뿐, 이를 더욱 철저히 발전시켜 지구 중심, 인간중심, 중국 중심의 차등 주의적 세계관에 근거한 기존의 보수적 사고의 틀을 완전히 타파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 연암은 유감스럽게도 현지에서 당대의 제일급에 속하는 유명 문인 학자들과 교유하는 행운을 누리지는 못해서 고증학을 중심으로 한 건륭 시대의 최신 학풍과 문단 동향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열하일기의 문제점들은 연암의 개인적 한계에서 유래한 것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시대적 제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암은 청조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 현실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사회 개혁의 방도를 진지하게 모색했던 그 시대의 선구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18세기의 조선은 심각한 갈등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봉건 지배층이 존명배청주의를 견지하면서 폐쇄적이고 구태의연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회였기 때문에, 연암은 자신의 진보적 사상과 문학을 자유로이 발전시켜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연암은 그 당시의 학자였다. 그는 기존의 고지식한 관점에서 탈피해 새로운 학설인 북학론을 내놓았다. 당시의 성리학을 탈피한 사상자체가 학계에서는 큰 논란거리였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열하일기라는 수필을 통해 사람들에게 은근히 사상을 심어주고 있다. 열하일기는 소설적 문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히 다가설 수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박지원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연암 박지원의 열정과 그 뜻이 담겨 있기에 열하일기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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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8.30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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