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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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인문학의 잠정적 종점

Ⅱ. 시학과 정보이론

Ⅲ. 리얼리티와 가상현실 사이

Ⅳ. 맺음: 새로운 문화통합

본문내용

스럽게도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새로운 과학 및 기술의 진전에는 경제적 이윤과 군사적 힘이라는 두 가지 추진력이 붙어있기 마련이었다. 그 현상이 오늘날 더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 중 어느 하나가 보다 더 우세하고 나머지 하나가 종속적인 경우가 있었음도 사실이나 종국에 가서 그 둘은 합세하기 마련이었다. 또한 인간의 복지라든가 생활의 편의에 따른 생의 질의 향상 등이 기치를 드높인 것도 사실이다. 그것들도 마침내는 경제적 이득에 수렴되기 일쑤였다.
이렇게 해서 돈과 칼에 의해서 과학적인 발견 발명 등은 기술과 손잡고서 당당히 합리화되고 그 존재 이유를 획득해 나갈 수도 있었던 바로 그 사실의 그늘에서 역으로 인간소외가 그리고 인간핍박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그로써 강박적인 것이 되고 또 독재적인 것으로 그 자체를 강화한 것이다. 인문적인 것은 향수가 되어서 뒷전에 물러서게 되었던 것이다.
과학은 과학 그 자체의 독자적인 얼굴보다는 돈의 얼굴로 칼의 얼굴로 인간역사와 사회의 전면(前面)에 나서곤 했던 것이다. 돈과 칼은 과학의 <페르조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에
압도당해서 인간성, 인간 내면은 후면으로 뒷걸음질 했던 것이다.
이 경우, 새로운 과학의 진전이 일상생활이며 사회생활 그리고 인생관이며 세계관에 이르도록 인간과 사회의 질서며 유대 등에 관한 파라다임 구실을 하였다는 점에도 유념해야 한다. 기계의 메카니즘, 자동조정의 기능에 밀리어 인간이 자동인형(automaton)화 하고 자동인형의 행위 체계에서 사회질서가 유추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당연히 새로운 과학의 진전은 새로운 <문화 통합>이며 <인간성 통합>이라는 과제를 인간들에게 부담시켜야 했던 것이다. 기술과 손잡은 과학은 영혼과 정서의 주체인 인간과 더불어서 서로
견제하고 서로 보완하여야 했던 것이다.
정보과학과 정보기술의 경우 그 돈과 칼의 위력은 이미 십분 입증되었고 앞으로 더 크게 입증될 것이다. 새로운 과학의 진전이 기술과 제휴한 정도에 비례해서 일어나기 마련인 부작용 또한 비례의 정도가 보다 더 증폭될 것도 능히 예상될 수 있다. 정보에 의한 사회의 기구화(메카니제이션)는 인간 자체의 두뇌며 감성의 메카니제이션을 재촉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 사고가 기술에 맡겨지고 심지어 인간 상상과 환상조차 그것에 의탁되어 가고 있다. 사고의 기계화와 상상의 기구화, 심지어 새로이 감성의 자동화까지 정보과학은 내다보고 있다. 버츄얼-리얼리티 곧 가상현실이 그 무엇보다 적절한 증표이지만, 그것은 물리적 자연적 현실성마저 박제(剝製)화함으로써 오래 인간과 친숙했던, 제일차적 세계이던 물질적 자연적 리얼리티를 박탈해버릴 기세마저 갖추고 있다. 정보공학 및 두뇌공학과 종교 및 예술을 포괄할 인문영역의 통합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 때 쉴리얼리즘이나 추상주의 이후 현대예술이 스스로 과학문명이며 기술문명을 자신의 아날로지로 삼은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화 통합의 노력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지만, 시의 경우라면 S. 스펜더의 "급행열차"가 기관차의 리듬을 시를 위한 <프로소디>의 리듬과 동화시킨 것을 보기의 하나로 제시해도 좋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새 국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로 해서 동기지어진 새로운 심성(mentality)이라는 것을 전제하고서 그 새로운 심성이 형이상학적 전제들이며 상상의 내용을 바꾸게 한 것이라는 A. N. 화이트 헷의 명제를 생각하면서, 작품론의 차원이 아니고 예술사 및 문학사의 사조(思潮)의 변혁에서 이룩된 문화통합의 예를 들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뉴톤 물리학과 코펠니크스 천문학이 신의 자리를 천상에서 인간의 마음 속 깊이에 옮겨서 구하게 된 새로운 신학적 파라다임의 발생을 촉구하였고 그 파장은 낭만주의에까지 미치게 한 선례를 우리들은 N. 프라이에 의지해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지만, 이 논리가 더한층 다른 차원으로 추구되면 프로이드 심리학과 해방신학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이에서 서로 파라다임 교환이 가능함을 시사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한 근로자가 프로메테우스에게 이바지하고 있었을 때라도 그는 반쯤 쫑긋 세운 귀로 오르페우스의 현악기 소리 아니면 판의 피리의 야성적인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라는 지적은 초시대적으로 적용될 깊은 상징성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선례들을 염두에 두면서 인문학과 문학은 이제 정보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통합의 앞장을 서야 한다. 회의론(懷疑論)적인 비판, 배타적 비판만 일삼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테크네]라는 말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향유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플라토는 Cratylus에서 반문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어원인 테크네는 예술분야건, 생산기술분야건 간에 무엇인가를 만드는 원리, 체계, 방법 혹은 솜씨 따위를 총체적으로 일컫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희랍인들에게는 플라토에 있어서 그렇듯이 알파벳이 테크네이듯 책이며 호메로스의 서사시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도 모두 테크네였던 것이다.
정보 사회에서 문학과 예술을 생각할 때, 관습적으로 또 기계론적으로 예술과 기술의 양분론, 마음과 기계의 양분론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인간 그 자체 또는 인간두뇌 및 신경조직이 <정보처리 시스템>이 됨으로 해서 갖게 될 심성이며 감성이라야 비로소 창작하고 독해하는 문학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Jonathan Culler가 "문학에 관해서 저술활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의 활동을 옹호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논란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한 꼬리를 물고 그러한 욕망도 논란도 없는
한, "교육이 각별히 말썽거리가 되기 쉬운 경제 상황 속에서 문학연구가 소멸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 발언이 행해졌었다.
물론 이들 발언이 지나치게 실용주의적이라고 논박될 수도 있으나, 문학이 사회현상으로 존재하는 한, 그런 뜻의 현실참여가 불가피한 이상, 당연히 정보 사회에서 문학이론은 그 자체를 옹호할 만한 명분과 실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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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2.09
  • 저작시기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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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02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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