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의 역사와 고유섭과 일제시대의 미술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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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미술사의 역사
1) 미술사의 성립
2) 형식사로서의 미술사
3) 정신사로서의 미술사
4) 도상학과 도상해석학
(1) 예술심리학으로서의 미술사
(2) 도상해석학으로서의 미술사
5) 사회사로서의 미술사
6) 문화사로서의 종합적 미술사

2. 고유섭과 일제시대의 미술사학

본문내용

사에서부터 사회경제사로, 그리고 정신사적 미술사학으로 그의 관점을 변모시켜 왔다. 그러나 그의 토대는 어디까지나 정신사적 관점에 두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그가 실증사학파에 가담하였던 사실에서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학에 있어서의 실증주읨와 미술사에 있어서의 정신주의는 어느 정도 동일한 궤도를 걸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실증주의 사학자들이 정체성 이론에 휘말린 것처럼 그가 적조미에 휘말린 점에서도 그렇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유섭은 양식사사회경제사정신사로 그 이론을 변모시켰지만, 결국에는 정신사를 토대로 하여 두 이론을 받아들인 미술사학으로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이론은 아마도 최초의 한국미술사학의 이론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를 한국미술사학의 창시자, 또는 선구자로 보아 좋을 것이다. 또한 한국미술사학의 유일한 길잡이로서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앞의 호아수영, 진홍섭 등 몇 학자들이 해방 후 지금까지 한국미술사학계를 이끌어 오고 있다. 따라서 그는 그야말로 한국미술사학의 실질적인 비조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몇 가지 한계점은 있다. 첫째로, 그는 말년에 가서 한국미술사학의 이론을 정신적인 데에 너무 치우치게 한 나머지, 한국미술의 특징을 적조나 애조, 또는 무관심성 같은 것으로 보는 등 일본 학자들의 주장의 영향을 본의 아니게 받아들였던 점이다. 또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미술사학의 일원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도 초기에는 다원론적으로 보고자 하였지만, 결국 삼국고려조선시대 할 것 없이 그 전통은 하나로 일관되었다고 하여 그가 항상 내세우던 역사성과 사회성을 망각해 버리지 않았나 저어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일제 관학파들의 학문 분위기 때문인 것도 간접 원인이 되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일제 말기의 시대적 상황이 그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이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가 이러한 자신의 모순에 고뇌하다가 폭음으로 건강을 해쳐 결국 젊은 나이에 요절해 버렸던 비극에서도 이 점은 잘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러한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초로 미술사학의 이론을 세우고 그러한 관점에서 많은 글을 쓴 근대미술사학의 비조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미술사학을 토대로 삼아 현대 한국미술사학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의 최대 당면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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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2.02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6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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