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보정책 정책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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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정책 정책사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통일외교안보정책 개요 2
Ⅱ 통일외교안보정책의 목표 3
Ⅲ 정책의 내용
외교분야 핵심정책 4
통일분야 핵심정책 9
안보분야 핵심정책10
Ⅳ 정책의 총체적 평가14
Ⅴ 참고자료 15

본문내용

자세를 감안할 때, 우리측의 노력 미흡으로만 판단하기에도 무리가 있음
○ 또한, 2004년부터 시작된 남북 장성급 회담도 일부 한계를 노정
- 1, 2차 장성급 회담의 합의 사항(서해상 무력충돌 방지, 상호 선전 선동물 철거)을 보장할 장치의 미흡
- 2005년 7월 3차 회담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도 실제 회담은 여전히 지연되고 있는 것도 문제
□ 향후 과제: 장성급 회담의 정례화 및 국방장관회담 재개 추진
○ 장성급 회담 순기 정상화 노력
○ 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개최 및 제도화
○ 남북 차관보급 고위 군사당국자 회담 개최 검토
2) 구체적 신뢰구축 조치의 실현 및 중.장기 계획 정립
□ 초기 여건: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 장치 부재 하, 2차례의 주요 교전 발생
○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교류.협력 활성화에도 불구, 남북한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은 여전히 답보 상태
* 상호 선전.선동, 군사적 대치 지속
○ 특히, ‘국민의 정부’ 5년 동안에만 남북한간 2차례의 중요한 교전이 발생, 남북한간 화해. 협력에도 부정적 영향
- 1999년의 연평해전
- 2002년의 서해교전
○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상호 우발적 군사충돌을 방지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실정
□ 정책 대응: 장성급 회담 개최를 통한 우발적 군사충돌방지 대책 마련
○ 2004년 5월과 6월의 제1차 및 2차 장성급 회담을 통해 남북한간 초보적
신뢰구축 조치에 합의
- NLL상 남북한간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상호 통신수단 발전
- 군사분계선 일대의 상호 선전.선동 수단 철거
○ 남북 장성급 회담 이후 NLL상 북한 선박 월선에 대해서도 보다 탄력적인 대응방향 시행
* 상호 의사소통 단을 통한 의도 파악 후 구체 대응
○ 2005년 7월, 서해 남북한간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 위한 통신연락소 설치.운영
○ 2005년 9월, 북한 선박 제주 인근 해역 공식 항해 허용
□ 평가: 북한의 소극적 태도 견지 속 합의사항 불이행에 대한 대책 미비
○ 전반적으로 남북한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는 부진하다는 평가를 면하기 힘든 것으로 판단
○ 2003년 이후 북한 핵 문제라는 근본적인 저해 요인이 등장하였음에도 국방차원의 회담 채널을 통해 이를 지적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
* 특히, 2005년 2월 북한의 ‘핵 억제력’ 보유 선언 이후
○ 기존의 군비통제 조치를 변화된 여건에 걸맞게 수정.보완하는 데에도 미흡한 것으로 판단
*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군비통제기본정책서』 미발간
○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을 교류.협력의 부차적 존재 정도로 다루는 정부의 인식이 극복되어야 할 것임
□ 향후 과제: 보다 적극적인 대북 군사적 신뢰구축 대화 제의 및 합의사항 이행 촉구
○ 보다 적극적인 대북 군사적 신뢰구축 제의
○ 기합의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의 수시 시행 및 북한측 이행 촉구
○ 남북한 군비통제 기본정책 보완.발전
Ⅳ. 정책의 총체적 평가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정책의 실패 즉 총체적 외교안보 정책의 실패다.
현 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이름하에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데 총론적 차원에서 평화번영정책이 햇볕정책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강론 차원에 가면 총론은 수사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남북 교류가 있긴 했지만 지나치게 국내정책 기반에 따라 즉흥적이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하면서도 우리는 쌀과 비료 제재를 연계시켜버렸다. 그리고 한미정상회담에 가서는 사실상의 제재라고 말했다. 그리고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를 비밀에 붙이면서 이미 작년 8월에 동의해줬다. 그건 언제라도 공해상에서 참관하거나 훈련에 가담하거나 북한을 임검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리고 한미 간의 전략적 유연성을 고위급 전략 자리에서 인정해줬다. 또한 위폐나 마약 등의 금융제재에 대해 간접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거기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면서 사실상 북한에 대한 제재에 어느 정도 동참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북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면 하겠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는 잘 풀리지 않으니까 북핵 문제 해결 전이더라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특사로 다녀오면 하겠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물질적,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해놓고 어떠한 물질적 지원도 구체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들쑥날쑥한 외교안보정책,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국의 세계전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정책을 편 것 등이 총체적 과실이다.
한명숙 국무총리가 대북포용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정부의 모순된 태도다. 북한은 남북관계에서는 경제협력이나 인도적 지원, 교류협력을 이야기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문제라든가 북한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는 전적으로 북미 간의 문제다. 핵이나 미사일, 평화협정체결 문제는 북미 간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포용정책은 남북 간의 관계이고, 핵이나 미사일이나 평화협정은 북미 간의 관계라고 북한이 분명히 선을 긋고,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남북대화나 북미대화를 가져왔다.
현 정부가 대북포용정책을 잘 계승했다면 핵실험을 저지시킬 수는 있었을까? 그렇다. 일관성 있게, 보다 완전한 대북포용정책이나 햇볕정책을 추진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북포용정책이나 햇볕정책은 남북 간의 관계이지만 북미 간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보장될 때만 햇볕정책의 순수성이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분리시켜버리고, 자주냐 동맹이냐 라는 이분론에 빠지고, 북미관계만 해결되면 남북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안일한 발상이 오늘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참고자료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http://www.pcpp.go.kr/pcpp/reportBoardRead.do?tb_idx=76&v_num=59&page=1&field=&word=&wdiv=&div=&gubun=&tb_etc1=20051231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11월 10일 방송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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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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