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사회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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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사회의 이해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북한의 농업, 교육, 과학기술, 관광, 체육 등 5개 분야에 관한 정책과 제도 및 현황을 설명하시오.
북한의 농업
북한의 체육
북한의 교육
북한의 과학기술
북한의 관광

2)다음 15개 항목을 간략하게 설명하시오.
(1)무계획의 명령경제
(2)천안함 폭침
(3)주체100년
(4)백두산줄기, 후지산줄기, 한라산줄기
(5)통미봉남(通美封南)
(6)종자론
(7)고장 난 전차
(8)부-자-손(父-子-孫) 3대 세습 공산독재왕국
(9)“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역사에서 미끄러진 괴물 같은 나라”
(10)선군정치
(11)99발 총살형
(12)“밥상 머리에서 버릇없이 구는 아이”
(13)연산군의 환생(還生)
(14)백두산 밀영
(15)주보중전(周報中傳)

본문내용

는 것 같고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은 백두산 밀영과 하바로프스크, 우수리스크 등 3가지다. 북한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출생지는 조선 인민 혁명군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백두산 밀영(양강도 삼지연군 백수산 소백수골: 해발 1,000-1,200m)입니다. 북한은 이곳을 김정일의 탄생지로 성역화해 놓았습니다. 김정일이 태어난 곳의 산봉우리가 正日峰이고 김일성의 혁명 동지들이자 부하인 유격 대원들이 정일의 탄생에 즈음하여 새로운 미래의 민족지도자(백두 광명성)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나무껍질을 벗기고 거기에 \"2천만 백의민족 대 풍운 백두 광명성 출현\"이라는 구호를 새겨두었던 것이 지금도 고목이 되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구호나무\'입니다. 북한 선전 기관들은 87년부터 \'백두산 밀영 탄생\'을 공식화 하면서 \'구호나무 학습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북한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남한 연구자로는 이찬행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김정일의 소련 출생 장소가 어디냐를 두고 5갈래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그 첫째가 하바로프스크 인근 와츠코예, 일명 브아츠크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서대숙, 조영환, 김현식, 손광주 등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후반서 40년대 중반에 걸쳐 만주, 소련 등지서 김일성과 함께 빨지산 활동을 했다는 고령의 중국거주 생존자들의 증언도 이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1987년까지는 하바로프스크 출생설이 정설로 통용되어 왔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소련 극동군 예하 국제홍군 특별보병 제88여단(일명: 중국동북항일교도여단)이 주둔해있던 소련령 연해주의 중심도시 하바로프스크 동북방 35km 지점의 아무르 강 연변 병영촌 와츠코예(일명:브아츠크)에서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것입인데 당시 김일성은 제88여단의 제1대대장이었다고 합니다. 대대병력은 약120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남산고급중학교 재학 중일 때 급우들에게 늘 \"내가 태어난 곳은 하바로프스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1987년 우수리스크, 일명 보르실로프 혹은 南 야영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하바로프스크는 다소 설득력이 약해졌습니다. 우스리스크 주장은 이종석, 이기봉, 박규식 등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15)주보중전(周報中傳)
[周報中傳]이 ‘백두산 밀영’주장을 뒤집었습니다. 중국 흑룡강 출판사가 87년에 펴낸 [周報中傳]이라는 회고록에 김정일의 출생지 얘기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周報中傳]이란 周報中이란 중국사람의 회고록입니다. 주보중은 중국공산당의 혁명열사로 중국동북항일교도여단(소련홍군 특별보병 제88여단)의 여단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제1대대장이던 김일성의 직속상관 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보중은 김정일의 출생지에 관해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회고록에 나오는 내용은 일목요연하고 증빙자료까지 완벽하게 붙어있는데 생일이 42년7월26일 이후가 아니라면 김일성의 직속상관 이었던 周報中의 주장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음은 [周報中傳]의 주요내용입니다. [1940년 가을 만주 동녕현(소. 만 국경지대)산 속에서 결혼한 김일성, 김정숙 부부는 그 해 겨울 우수리강을 건너 소련령으로 들어왔다. 41년1월 중순에서 42년7월 중순까지 당시 소련 극동군구에서 설치한 南 야영(우수리스크 교외: 나홋카 서북방 60km)에 수용돼 있었다. (필자주: 하바로프스크 출생설에 나오는 와츠코에 병영촌은 南 야영보다 뒤에 생긴 北 야영이었다.) 이 南 야영은 만주 三江평원 동남쪽 국경 소도시 동녕과 우수리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바라보는 소련령 연해주의 국경 요충지였다. 우수리스크시를 중국에서는雙城子라고 불렀다. 1920년 초 당시 유명했던 독립 운동가들이던 김좌진, 홍범도, 안무, 지청천 등이 대한독립군단을 구성하는 바람에 수 천호의 조선인들이 정착했던 곳이었다. 1937년 스타린이 이곳의 조선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켜버려 김일성이 활동하던 40년 초엔 조선인 정착민은 떠나고 없던 때였다. 우수리스크와 하바로프스크는 600km 나 떨어져 있다. 42년7월 스타린 명령에 따라 42년8월 하바로프스크 근처 北 야영에 제88여단이 창설되었다. 7월 남 야영 수용자 전부가 北 야영으로 이동했다. 김일성, 김정숙 부부도 北 야영으로 이동했다. 이 사실은 소련 국방성 중앙공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있는 기록에도 나와있다. \"제88여단 편성은 극동군구 사령부 제00132호(42년7월16일자)에 따라 42년7월26일부터 9월15일 사이에 수행되었다\"라고 돼있다. 따라서 김정일의 생일이 42년 2월16일이 정확하다면北 야영으로 가기 전 南 야영에서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 중국의 옛 빨치산 동료들은 아마 기억이 오래돼 5달 뒤 이동한 것을 혼동해 北 야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세 번째로 이종석은 94년과 95년에 출간된 [주석궁을 접수한 52세 황태자] [김정일 그는 누구인가] [김정일 북한대백과] [현대북한의 이해]등에서 김정일이 블라디보스톡 시내 병원에서 출생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김태서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그는 누구인가]에서 사마르칸트 출생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이상우, 최성, 허만위 등이 오케얀스카야의 하마탄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南 야영이냐 北 야영이냐는 것 외는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생일은 42년생이 아니라 41년2월16일이었던 것을 아버지 김일성의 생일(1912년)과 30년 차이가 나도록 꼭 맞추기 위해 조작했다고 하는데 생일과 출생지는 물론 이름까지도 모두 새로 짜맞추었다는 등 김정일의 뿌리에 관한 기본자료는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소련서 태어난 김정일의 어릴 적 이름은 \'유라 일생 예비치 킴\'이었습니다. 유라(yura)는 이름이고 킴은 김씨, 일생 예비치는 아버지인 일성의 아들이라는 소련 식 이름이었고 어릴 때 애칭은 유라 였습니다. 해방 뒤 평양으로 들어오면서 정일(正一)로 작명했던 이름을 1980년대 김일성 후계자로 확정되자 이복동생들인 평일(平一) 등과 차별화하기 위해 正一을 正日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의 日자와 짝을 맞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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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2.10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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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2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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