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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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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가면극(탈춤, 탈놀이)의 의미

Ⅲ. 가면극(탈춤, 탈놀이)의 종류
1. 안동 하회 별신굿탈놀이
2. 북청 사자놀음
3. 양주별산대 놀이
4. 송파 산대놀이
5. 봉산 탈춤
6. 강령 탈춤
7. 은율 탈춤
8. 통영 오광대
9. 고성 오광대
10. 진주오광대
11. 수영 들놀음
12. 동래 들놀음

Ⅳ. 가면극(탈춤, 탈놀이)의 형성과정

Ⅴ. 가면극(탈춤, 탈놀이)의 공연
1. 의상과 소도구
2. 춤사위
3. 춤의 특징

Ⅵ. 가면극(탈춤, 탈놀이)의 탈

Ⅶ. 가면극(탈춤, 탈놀이)의 교육자료
1. 첫째 단계: 구상 단계
2. 둘째 단계: 자료 수집 단계
3. 셋째 단계: 자료 제작 단계
1) 프로그램 구상의 기본 방향
2) 저작 도구

Ⅷ. 가면극(탈춤, 탈놀이)과 남성관희자

참고문헌

본문내용

), 즉 어린 기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동안 노장의 상대역을 무당이라고 생각하여 소무(小巫)로 표기한 것은 착오였음이 드러난다.
(다)는 샌님(늙은 유생)이 소매(젊은 계집)를 차지하고 있는데, 칼을 찬 젊은 포도부장이 등장하여 소매를 뺏는 내용이다. 이는 현재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의 샌님 포도부장과장과 동일한 내용이다. 예전에는 봉산탈춤에도 이 과장이 있었다. 특히(다)에서 샌님의 탈은 긴 눈썹에 언청이 모습이다. 이는 1929년에 수집된 양주별산대놀이의 샌님탈(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과 현재 양주별산대놀이송파산대놀이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의 샌님탈이 긴 눈썹에 쌍언청이 모습인 점과 일치한다. 그리고 샌님이 부채를 부치며 거드름을 부리는 모습까지도 완전히 일치한다.
(라)는 거사와 사당춤인데, 현재는 봉산탈춤에 거사와 사당춤이 있다. 이를 통해 거사춤과 사당춤이 양주송파별산대놀이에는 없지만, 원래 본산대놀이에는 이 춤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는 할미과장을 묘사한다. 할미가 첩을 질투하여 싸우다가 죽자, 무당이 등장하여 방울을 흔들며 굿을 거행하는 내용이다. 이는 현재도 서울 근교의 산대놀이와 해서탈춤에서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내용이다. 야류와 오광대에서는 이 장면이 할미 죽음 후에 무당굿을 하는 것이 아니고, 상두군이 상여소리를 부르는 내용으로 변이되어 있다. 가산오광대에서는 영감과 할미의 싸움에서 영감이 죽자, 무당이 등장하여 굿을 거행하는 내용으로 변이되었다.
이 시는 1770년대에 상좌춤과장노장과장샌님 포도부장과장거사 사당과장할미과장을 갖춘 탈놀이가 현존하는 별산대놀이해서탈춤야류오광대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서울 근교에서 전문적 놀이꾼에 의해 연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해 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역시 강이천이 지은 연작 한시 <한경사>(漢京詞)에 의하면, 이미 국가 행사로서의 산대희가 폐지된 18세기 후반에 서울의 시정에서는 전문적 놀이꾼들이 소규모의 산대(山臺)를 가설하고 산대 위에서 철괴무 등을 공연한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의 산대는 원래 중국 사신의 영접시에 설치하던 것과 같은 대규모의 가설무대가 아니다. 중국 사신 영접시에 설치하던 산대는 산처럼 큰 대규모의 가설무대로서 수백 명의 인력이 동원되고, 엄청난 분량의 목재가 소용되며, 막대한 비용이 들어 그 폐해가 극심하였다. 그래서 인조 이후에는 국가에서조차 이를 설치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대규모의 산대를 민간의 공연에서 설치하여 공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국가적인 행사로 산대희를 공연할 때도 예산대(曳山臺)라고 하여 바퀴를 달아 끌고 다니며 그 위에서 공연하는 소규모의 산대가 있었는데, <한경사>에서 묘사한 산대는 바로 예산대와 같은 소규모의 산대를 말한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1775년(영조 51)에 저술한 사소절(士小節)에서는 “집안에 산대(山臺)철괴(鐵拐)만석(曼碩) 등의 음란한 놀이를 베풀고 부인들이 보게 하여 웃음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니 집안을 바로 다스리는 도리가 아니다.”라고 하며, 당시 산대철괴만석 등 전문적 놀이꾼에 의한 연희가 사대부가에서도 공연되었음을 전해 준다. 여기서의 산대는 원래의 의미와 달리 쓰인 것이다. 아무리 소규모라 하더라도 집안에서 무대를 설치하여 공연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문맥상으로도 산대가 철괴만석 등과 같이 놀이의 일종으로 해석된다. 정현석의 교방가요에 의하면, 산대는 양반중미인이 탈을 쓰고 나오는 탈놀이이다. 그러므로 사소절에 소개된 산대도 탈놀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대부가의 잔치에서 전문적 놀이꾼이 탈놀이를 논 것은 이미 조선 전기 김구의 한시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1872년 정현석(鄭顯奭)이 엮은 교방가요(敎坊歌謠)에 소개된 <승무>는 탈놀이의 노장과장이 독립된 놀이로 공연되었음을 알려 준다.
어린 기생이 절하고 춤추면, 풍류랑이 쾌자를 입고 상대해서 춤추며 장난한다. 잠시 후에 노승이 집 모퉁이에 엎드려 있는데, 상좌가 나가서 춤을 추고는 노승 앞으로 가서 기생을 보라고 가리킨다. 노승은 머리를 흔들면서 보지 않는다. 상좌가 다시 귓속말을 하자 노승은 조금씩 시선을 든다. 상좌가 석장을 끌자 노승은 두려워 떨면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려다가 엎어진다. 또 상좌가 끌어내자 이제는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하여 점점 기생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 상좌가 중간에서 주선을 하여 풍류랑이 일부러 자리를 피해 준다. 노승은 기생과 상스런 장난을 하면서도 풍류랑이 가까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때마다 피한다. 풍류랑이 비단 가죽신을 기생의 발에 신겨 주고 가자, 노승은 색동 가죽신으로 바꾸어 신겨 준다. 풍류랑이 돌아와서 기생의 가죽신이 바뀐 것을 보고는 노하여 기생을 때린다. 기생이 우는 체하자 풍류랑은 기생의 허리를 안고는 분을 풀고 간다. 노승이 다시 와서 장난하면서 기생을 엎고 가자, 풍류랑이 술에 취해 어지러운 걸음걸이로 들어와서 기생이 없는 것을 보고는 다리를 펴고 앉아서 운다. 기생이 노승을 버리고 돌아와서 풍류랑의 허리를 안고 울자, 풍류랑은 기생을 때린다. 기생이 흐느끼면서 그치지 않자, 풍류랑이 기생의 허리를 안으며 그녀의 화를 풀어 준다. 그래도 기생이 듣지를 않으므로 풍류랑이 계속해서 화를 풀어 주자, 기생은 다시 일어나서 풍류랑과 춤을 춘다. 풍류랑이 다른 어린 기생을 안으니 먼저 나왔던 기생이 질투하여 새로 나온 기생을 때리고는 또 춤을 춘다. 기생이 먼저 절하고 나가고, 풍류랑도 나간 후 노승과 상좌의 춤이 끝나니, 이것이 한 토막의 잡희이다.
참고문헌
박진태 - 한국과 티베트의 탈춤의 비교, 우리말글학회, 2004
박진태 - 한국 탈춤의 즉흥성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2001
양민정 - 한국어 문화교육의 세계화와 탈춤의 활용방안 연구, 세계문학비교학회, 2008
양지선 - 한국어 교육에서의 민속극 활용 방안 연구 : 탈춤을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이재란 - 조선시대 탈춤의 사회학적 연구, 청주대학교, 2001
채하연 - 문화상품으로서 탈춤의 엔터테인먼트적 기능과 특성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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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09
  • 저작시기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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