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의 여운형과 교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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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방 이후의 여운형과 교사라는 직업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역사적 인물 조사 - 여운형

★ 직업 인물 조사 - 교사

★ 나의 생각

본문내용

전 교과를 통해 스며들도록 하기 위한 통합이었다.
셋째, 교육을 통해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낮추어 시세와 민도에 맞도록 하기 위해 직업과를 강조하였다. 31 운동 직후 문화정책을 시도한다고 하여 직업교과를 폐한 적이 잠시 있었다. 그러나 직업교과의 약화를 강조한 것만으로도 지식중심교육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조선의 학교 교육은 반지식교육, 노동교육, 실생활에 쓸모있는 교육으로 곧 회귀하였다. 직업과는 오히려 필수과목이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통털어 학교 교과와 교육내용은 시세와 민도에 맞는 반지식교육, 노동교육, 실생활교육에 적합한 내용이었다.
넷째, 초등학교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보통지식을 가르치고자 하였기 때문에 교과와 그 내용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로 선정되었다. 특히 직업과(농업, 공업, 상업, 수산)등은 초보적인 노작기능을 내용으로 하였고 필수과목이었다.
다섯째, 초등학교 교육내용의 질적 수준은 "간이"한 것이었다. 산술의 경우를 예로 들면,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수와 연산 영역에 한정되었고, 수준은 정수와 가감승제, 주산 정도로 일상의 계산을 위한 것이었다. 1938년 3차 조선교육령 시기에 가서 6학년에 비례와 보합산의 내용이 들어가는 정도였다. 일본어와 조선어를 포함하는 언어교육의 내용도 일상의 읽기, 쓰기, 말하기, 글짓기 정도였다. 수신은 교과의 편제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데, 충효예인을 시작으로 충군애국의 덕목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수신에서 강조하는 덕목이 일본어 읽기, 쓰기, 말하기, 글짓기의 소재가 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수신은 별도 교과로서 그리고 전 교과에 걸쳐서 가르쳐지는 중요한 교육내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문적 혹은 과학적 교과나 지식은 4학년 이상에서 교과의 성격에 적합한 내용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혹은 충군애국의 덕목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내용을 가르쳤다. 전반적으로 학교 교육의 목표를 시세와 민도에 맞게 낮추었고, 교과의 편제는 실용적인 것이었고, 내용의 수준은 낮은 것이었다.
★ 나의 생각
마지막으로 해방 전후 내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하였을 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 일제강점기는 억압의 시대였고 나 역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해 보았다. 처음에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소극적인 태도로 방관하기만 했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마음에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현실을 피하기만 하였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우리가 독립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현실 순응적인 자세가 되어갔다. 일제에 저항해보려 했지만 주위에서 들려오는 많은 탄압과 고문 소식에 겁이 났고, 의병 활동을 하며 강하게 일제에 저항한 많은 민족투사들처럼 싸우기에는 내 의지가 조금 부족했다. 빛이 보이지 않는 날들 속에 마지막 지조는 지키기 위해 일제에 가담하거나 일본을 도와주는 행동은 하고 있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일제에 협조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정체성의 혼란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940년대로 접어들었다. 일제의 억압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말까지 쓰지도 못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끌려갔다. 나는 아직도 현실을 피해 다니는 생활만을 할 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제대로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우리나라를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참여는 하지 않는 것이 나 자신이었다.
드디어 광복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찾아왔다. 기쁨의 감정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담담하다.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가두었던 세력이 물러나서,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희망을 가지고 기를 펴고 살 수 있어서 좋지만 나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지는 알 수 없다. 소련으로부터 온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있고, 이에 대응하는 자유주의 사상 또한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신탁 통치안'이라는 게 발표되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우리는 아직 독립적인 나라를 이끌어 갈 능력이 없는걸까. 외세의 개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주위의 말들을 들어보니 미국과 소련 등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조정하고 있는 거 같아 보였다. 이에 따라 국민들도 의견이 나뉘는 등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가는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결국 분단이 되나보다. 우리나라의 정부 인사들은 나름대로 좌우합작운동도 펼쳐보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이대로 한 나라가 둘로 나눠지는건가. 아, 정말 슬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렇게 갈라져버리면 다시 하나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하루빨리 완전 통일된 조국의 모습이 보고 싶다.
<참고문헌>
고모다 마유미, 여운형의 대미인식 변화, 『동아시아연구』, 제10호, 고려대학교 동아시아교육연구단, 2005, pp.133~149.
김경자 외 4인, 일제강점기 초등교육의 본질: 교육과정 요소를 중심으로, 『초등교육연구』, 17권 1호, 한국초등교육학회, 2004, pp.293~325.
김영택, 815 해방당시 조선총독부가 여운형을 선택한 배경과 담판 내용, 『한국학논총』, 29권,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7, pp.411~471.
노경채, 815 후 여운형의 정치노선과 활동, 『사총』, 제48집, 고대사학회, 1998, pp.55~86.
신병식, 한국현대사와 제3의길 - 여운형, 김구, 조봉암의 노선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제34집 제3호, 한국정치학회, 2000, pp.61~81.
이영민, 좌익들의 과거사: 여운형은 누가 죽였는가 ~ 국가 생기기도 전에 국가가 죽였다? ~, 『한국논단』, 197권, 한국논단, 2006, pp.67~77.
일제강점기의교육,『네이버백과사전』, (200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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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9.30
  • 저작시기2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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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8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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