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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다.
정암이 생각한 王道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仁義禮智에 입각한 至治의 실현이었으니,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명한다.
마음을 操存하고 道를 펴면, 仁을 행함에 있어서는 봄과 같이 만물을 仁으로써 생육하고, 義를 행함에 있어서는 가을과 같이 義로써 만민을 바르게 할 것이며, 禮智도 또한 천리에 극진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니, 仁義禮智의 道가 천하에 행하여지면 나라 다스리는 규모가 이에 더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이는 임금에게 올린 대책으로서, 정치에 있어서 다만 明道와 行仁을 강조하는 이러한 至治主義는 그의 천인합일관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정암은 다음과 같이 정통적 統活論을 편다.
먼저 자기의 德을 닦고 이를 行事之間에 미루어 간다면 사람마다 진실로 감복하게 되어 교화를 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만약 德을 닦지 아니하고 行事에 있어서 겉으로 꾸미기만 한다면 또한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자기의 德을 돈독히 하여 모든 교화가 明德으로부터 유출되게 하면 백성들이 자연히 우러러 감동하여 마지 않을 것입니다.
위의 두 인용문을 살필 때 仁義의 도덕정치, 즉 德治의 이상적 구현에서는 末端的 制度 같은 것은 거의 존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법치의 意義를 전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암의 至治의 실현은 당연히 異端의 배척을 수반한다. 그가 道敎崇拜機關인 昭格署라는 관청을 폐지하도록 강력히 요구한 것은 天理에 입각한 人道의 實行이라는 道學의 관점에서 볼 때 당연한 것이다. 상소문에서 그는 먼저 “ 道가 한결같아야 德이 밝아지고, 정치가 순수해야 나라가 다스려지는 법 ”이라 하여 임금에게 精一之功을 강조한다. 그리고 임금이 이단의 말에 빠지면 體道宣化할 수 없기 때문에, “ 民法은 맞지 않고 下情은 上達치 못하여 천리에 어긋나며, 陰陽이 막히어 만물이 번성하지 못할 것 ”이라 하여 旣述한 바, 천인상감론적 이론전개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昭格署의 폐지와 왕도의 실현을 주장한다.
지금 昭格署라는 것은 道敎를 펴서 民을 邪로 가르쳐 憲憲히 따라 받들게 하고 因循姑息하게 하여, 顯顯한 의리에는 멀어지고 誕罔한 우상에만 묘연하게 합니다. 실로 이는 邪正의 나뉨이요, 정치純雜의 원인이며, 上帝喜怒의 계기이니, 왕도정치로써 해결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오직 왕도에 惟一하고, 왕정에 유순히 하여 < 克從一德 >하고 < 化民干正 >할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至治의 실현을 위해서 정암은 君臣上下의 信을 전제한다. 상하좌우가 信하지 못하여 서로 경계하고 의심할 때, 그들을 하나로 묶을 구심적 요소를 갖지 못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비록 어떤 목표를 조작, 설정하여 내걸었다 하더라도, 상호불신 속에서는 각기 책임있게 盡力하지 못하고 다투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목표가 至治의 실현이라는 역사적 과업일 경우, 上下 한치의 흠이라도 보일 때에는 敗責을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특히 임금의 至誠을 요구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그가 君과 臣을 天과 四時에 비유, 天이 自行하고 四時의 運行이 없으면 만물이 不遂하는 것처럼, 임금이 自任하고 大臣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모든 교화가 일어날 수 없다 하고, 君臣이 반드시 至誠으로 서로 믿어 간격이 없은 연후에야 至治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한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결국 정암의 至治라는 역사적 이념구현은 임금의 의심에서 좌절된 것임을 볼 때 그의 저러한 말은 道를 밝히기 위한 간절한 호소로까지 들린다.
5. 나오며.
지금까지 정암의 사상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정암이 우리나라 道學의 창도자로서 제일 큰공을 돌리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몇 가지 점에서 그러하니, 첫째 理學으로서의 道學에 대한 사색, 관찰의 본격성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天을 형이상학적으로 파악하고있는 것이나, 인간을 이러한 天에 대응하여 신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이 그러하며, 특히 宇宙論에 있어서 만물의 생성원리를 태극, 음양으로 파악하여 理氣二元論的 면모를 보이는 점이 그러하다. 물론 이는 정암에게서 최초로 나타난 사상은 아니다. 그러나 도학의 정통적 의리정신을 이어받은 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진지한 사색을 기울였음을 뜻한다. 둘째 그의 학문의 실천적 측면이다. 정암은 그 자신 일개의 선비로서 오직 正道와 義理만을 알아 그 인간적, 정치적 실천에 진력하였다. 이는 단순히 학문을 대상적으로 놓고 분석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일삼는 후기 성리학자들의 空談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일반적으로 정암을 실천적 도학자로 규정한다. 그러나 적어도 儒學 또는 道學이 헛된 空理空論이 아닐진대, 다만 사변적 학문이 아닐진대, 그가 내면으로 저러한 學的 인식과 추구 속에서 이를 실천하고자 했던 점은 그의 학문의 속성상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 있어서 지성인은 현실에 대하여 그 圈外에 서서 항상 비판하고 또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일을 최대의 임무로 한다. 이것이 또한 선비이다. 정암이 단순히 일개의 정치가였다면 모르거니와 그는 도학자요 선비로서, 비록 짧은 정치적 생명 속에서나마 자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본다. 사실 정암은 行權을 인식하면서도 守經을 위주로 했다. 그러나 時中은 聖人도 어렵다 하는데, 적어도 聖人을 기약하고 堯舜君民을 도모하는 도학자들에게 있어서 이는 정통적 처세정신이다. 그리고 이러한 擇善固執의 정신 속에서 인간사회의 질서가 잡히는 것이니 이는 또한 역사평가의 기준이 된다고 할 것이다. 너무 단순화한 명제지만, 인간의 역사를 선과 악의, 正과 不正의 투쟁산물로서 볼 때, 우리는 정암이 역사상 점하는 위치를 그 이상 높일 것도 없지만, 또한 지나치게 비하해서도 안되며, 그 시대와 사회의 배경 속에서 정당히 평가하지 않으면 안된 다.
( 참 고 문 헌 )
1. 유승국 화갑기념논집 (동방사상논고) 1983년
전통적 도개념과 정암도학사상의 성격 오 종일
2. 동대논총 2 동덕여대 1971년
조정암의 도학사상에 대한 고찰 이 동준
3. 민족문화연구 14 1979년
조정암의 도학관 김 기현
4. 한국의 사상
조광조의 지치주의 김 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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