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의 이해 A형] 1960~1980년대 한국의 산업정책에 관해 논하시오 :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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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산업의 이해 A형] 1960~1980년대 한국의 산업정책에 관해 논하시오 : 산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산업정책이란

 2. 1960~1980년대 한국의 산업정책
  1) 한국의 산업정책의 개요
  2) 5개년 경제개발계획(1960년 대)
  3) 수출제일주의(1960년 대)
  4) 경제발전(1960년 대)
  5) 경제개발(1960년 대)
  6) 미국의 대 한국 원조와 협력관계(1970년 대)
  7) 새마을운동(1970년 대)
  8) 중화학산업 육성(1970년 대)
  9) 균형발전정책(1980년 대)
  10) 시장지향적 경제개혁(1980년 대)

 3. 1960~1980년대 한국의 산업정책의 성격

 4. 1960~1980년대 한국의 산업정책의 추진 체계

 5. 1960~1980년대 한국의 산업정책의 특징
  1) 국가주도형 산업정책
  2) 신고전파 경제이론
  3) 화폐 금융 정책
  4) 조세 정책
  5) 재정 정책
  6) 산업조직정책
  7) 산업구조정책

 6. 한국의 산업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

 7. 시사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업지원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고, 전문화된 기업지원기관을 수요자 중심으로 정비확충하여 공공부문의 직접 연계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일괄 지원상담(window)과 중개기능(brokering)을 담당할 기업지원 플랫폼을 설립하고, 지역별 산학연, 산업지원기관을 망라한 기업지원네트워크를 전지역으로 확대하여 기술, 금융, 인력정보 등을 효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넷째 지역의 발전 잠재력과 지속가능한 산업발전을 위해서 지방대학 및 연구기관의 응용실용화 연구기능을 양적질적으로 확충하여 자생적인 기술혁신 능력을 제고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부족한 과학기술관련 예산 및 인력을 체계적으로 확충하고, 수도권 및 대전에 집중되어 있는 연구개발기관 및 이공계분야 우수대학 일부기능을 지역 전략산업분포에 맞추어 지방으로의 이전 또는 분원을 설치해야 한다. 또한 테크노파크, 지역기술협력센터, 지역협력연구센터 등 기술 인프라를 전국적으로 균형 있게 조성해야 한다.
7. 시사점
한국의 경제개발과정에서의 산업정책에 대한 대외적 독립성 문제는 경쟁국인 대만과는 다른 다소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특정국이 대외적으로 정책적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산업기반을 갖추고 있거나 부존자원, 축적된 자본이나 기술, 개발경험 등 개발요소들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최악의 개발조건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있던 상태였다. 2차 대전 후 정치적 독립을 얻었던 한국은 전승국들인 미국과 소련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한국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임의로 국토는 양분되었고, 그 나마 일제의 만주침략 전진기지로 발전 시설, 화학산업 등 군수용 산업시설이 남아있었던 북쪽은 소련 공산주의정권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남북한 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대립뿐만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좌우익간 사상적 대립이 한국전쟁 발발 시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통치경험이 없었던 정치 지도자들과 행정경험이 없었던 정부관리들, 하지 미군군정청의 경험 미숙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당시 미 군정청의 통치수준은 일본의 맥아더 점령군 사령부와 달리 한국경제를 어떻게 재건해 보겠다는 기본구상조차 없었고 단지 미국의 원조물자를 관리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평가된다. 여기에 일본은 패전국임에 불구하고 강력한 국가통치경험을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후 복구과정에서 이께다, 요시다, 기시 등 구 일본제국주의 관리들의 리더십이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모택동 공산당 정권에 대륙을 내어 주고 대만섬으로 망명한 장개석 정권과도 통치경험 면에서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다. 당시 한국은 통치경험은 전혀 없고 단지 정치적 철학만 가지고 있던 전형적인 후진국 독립투사 출신 정치지도자들과 일본 식민지교육을 받았던 일부 관리층이 국가의 전후 복구과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국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1962년 제 3공화국 정부가 자발적인 외자조달에 나설 때까지 물자와 외화부족 문제를 미국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원조의존경제시대’를 경험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은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60년대 들어서도 부족한 개발재원, 빈약한 부존자원, 개발경험과 산업기술의 부족 등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을 비롯한 선진국과 IBRD 및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이 불가피하여 산업정책의 대외 의존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단계적으로 1970년 초에 미국의 원조가 종료 되고부터는 경제개발용 자금 및 기술을 대부분 해외차입에 의존해야 한데다, 국내 산업 구조의 중화학산업 중심으로 고도화가 추진되면서 막대한 외자조달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점점 GDP대비 외채 비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낮은 소득수준으로 인한 내수 소비시장 규모의 협소로 생산제품 대부분의 판로를 수출에 의존해야 했고, 수출용 원부자재 및 시설재류까지 해외시장에서 조달을 해야하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로 필연적으로 산업정책도 대외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규모의 급증으로 경쟁국인 대만보다는 경제의 대외의존도 비중이 항상 낮게 나타나고 있으나 중남미의 칠레나 페루 보다는 높게 기록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기존의 높은 무역의존도 외에 비정상적으로 단기외채가 급증하면서 국민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1960~1980년대 한국의 산업정책에 관해 논해 보았다. 한국은 경제개발기간 중 정치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새마을운동 등 국민과의 경제개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 노력을 통한 산업정책의 자율성, 전문직업 관료제도와 생산적인 교육정책 등 경제개발 추진기반의 구축을 통한 산업정책의 안정성, 기업-국민-정부 3자간의 효율적인 국가혁신체계 구축을 통한 산업정책의 부단한 혁신 노력 등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면서 4개국 중 가장 유효성이 높은 산업정책을 펴면서 압축성장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한국은 동족간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한 한국전쟁(1950-53)과 국토분단 피해, 막대한 국가 안보비용 부담, 빈약한 부존자원과 자본 및 기술의 부족 등 불리한 개발환경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제한적인 개발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산업정책을 추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재벌기업 등 대기업 중심형의 차별적 산업정책, 산업별 및 지역별 요소배분 차별정책, 사회계층에 대한 분배기능 경시 등 상대적으로 신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민간부문 중심으로 산업정책의 공정성을 기하지도 못했고, 대외적으로도 자본과 기술은 물론이고 생산제품 판로의 대외의존 등 제한적인 개발여건으로 산업정책의 독립성도 취약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참고문헌
이경태, 산업정책의 이론과 실태, 산업연구원, 1991.
박 승, 경제발전론, 박영사, 2000.
박유영, 경제정책, 삼영사, 2000.
김세원 외, 산업정책론, 박영사, 1996.
장하준, 국가의 역할, 부키, 2003
이진면, 우리나라 지역경제여건의 현황과 개선방안, 산업연구원, 2003.
이경태, 산업정책의 이론과 현실, 산업연구원 연구총서, 1999.
차의환, 정책평가의 이론과 실제, 한울 아카데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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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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