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와 발해의 행정제도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의 행정제도 - 관제의 성립과 발달, 조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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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와 발해의 행정제도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의 행정제도 - 관제의 성립과 발달, 조세제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삼국시대의 행정제도

I. 고구려
 1. 관제의 성립
 2. 관제의 발달
 1) 중앙행정조직
 2) 지방행정조직
 3. 조세제도

II. 백제
 1. 관제의 성립
 2. 관제의 발달
 1) 중앙행정조직
  가) 6좌평제
  나) 16관계
 2) 내외관 22부
 3) 지방행정조직
 3. 조세제도

III. 신라
 1. 관제의 성립
 2. 관제의 발달
 1) 중앙행정조직
  가) 17관계와 골품제
  나) 관부의 성립
 2) 지방행정조직
 3. 조세제도

IV. 발해
 1. 발해의 건국
 2. 발해의 관제
 1) 중앙행정조직
 2) 지방행정조직

본문내용

위계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은 물론, 상대
등 출신이 왕위에 올랐다.
집사성: 품주가 집사성이 되고, 이것이 진덕왕 5년에 다시 집사부
로 개편되었다. 원래 품주는 재정기관이었는데, 조부 창부가 분화
되면서 정무를 담당한 집사성으로 개칭된 것이다. 집사부는 왕권을
뒷받침하는 가신적 역할에서 벗어나, 통일 후에는 최고정무기구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집사부의 장인 중시가 상대등을 대신하여 실권
자가 되고, 왕비족이나 상대등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병부: 법흥왕 때 설치된 병부는 신라 최초의 관부로서, 3인의 영
을 두어 병권의 1인 집중을 방지하였다.
조부: 원래 품주가 담당하던 공부를 분리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조부의 장인 조부령은 2인인데, 진덕왕 때 1인을 증원한 듯하며, 금
하에서 대각간의 관료 중에서 임용된 듯한다.
칭는 품주가 겸하고 있던 창고의 일을 진덕왕 때 독립시킨 기관
인데 조세와 창고 업무를 관장하였다. 창부령 2인을 두었는데, 대아
찬에서 대각간에 이르는 관위자가 이에 임용되었다.
예부: 외교 의례를 담당한 관저로 그 장관인 예부령은 대아찬에
서 대각간의 관위자가 임용되었다.
사정부: 귀족이나 관사의 규찰을 담당한 사정부는, 그 장관으로
대아찬에서 각간의 관위에 있는 자로 영 1인을 임용하였다.
예작는 일시 예작전 수례부로도 별칭 또는 개칭되고, 영선사무를
담당하였다. 장관인 부령은 역시 대아찬에서 각간의 관위자 중에서
임용되었다.
영객부: 본래 왜전이라 하던 것을 진평왕 때 영객전으로 고치고,
그 뒤에 따로 왜전을 두었으며, 그 장관은 영객부령이다. 이 영객부
는 처음에 왜사를 접대하던 것이 외빈을 접대하는 관저로 기능이
확대된 것으로 생각된다.
위화는 관사의 인사를 관장한 사부에 해당하는 관저로 신문왕
때 금하신 2인을 두었다가 3인으로 늘리고, 애장왕 때 그 장관을
영이라 하여 제2관등인 이찬과 대각간으로 임용했다.
좌우이방는 진덕왕 때의 좌이방부와 문무왕 때의 우이방부는 모
두 사법기관으로 생각되는데, 그 장은 제9관등의 급찬에서 제3위의
잡찬에서 각각 2인의 영을 두었다.
(2) 지방행정조직
신라의 지방행정조직은 6세기 초 지증왕 때 군현제가 채택된 이
래 각 군현에 중앙관을 파견하고 그 위에 5주를 설치하여 감독하였
는데, 지방장관인 주의 군주와 군현의 태수는 왕경인이 임용되었으
며, 정이라는 군사조직으로써 각 주를 지켰다. 한편 서울은 씨족사
회의 6촌의 전통에 따라 6부로 나누고 동이라는 군사조직으로써 수
도를 지켰다. 그리고 특히 동원경(강릉)과 중원경(충주)의 2소경을
두어 사신이 이를 지배하였다.
통일 이후 수도는 행정조직을 6부 360방으로 개편하고, 지방은 9
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으며, 이에 수반하여 군제로 9서당 10정으로
정비됨으로써 새로운 지방통치체제가 완비되었다. 지방의 행정 및
군권을 장악한 주의 장관을 도독이라 하고, 군에 태수를, 현에 영
을, 소경에는 사신을 두었다. 이 외에 향 소 부곡이라는 천민 집
단거주지를 행정구역으로 설정하고 향사가 지배하게 하였다. 9주 5
소경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3. 조세제도
신라의 조세제도는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조(토지세)- 용(부
역)- 조(특산물 공납)의 체제를 갖추었으며, 토지제도는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는 결빈법을 사용하였다.
신라는 일책부터 족장들을 관리로 흡수하면서 그들이 지배하던
토지와 인민 대신 녹읍을 지급하여 그들의 생활 기반으로 삼게 하
였다. 그러나 관료제의 발달에 따라 녹읍을 폐지하고, 신문왕(689)
패에 관료전과 일종의 녹봉제인 세조의 지급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경덕왕(757) 때에 직전 세조는 폐지되고 녹읍이 부활되었다.
통일 신라는 성덕왕(722) 때에 당나라의 균전제를 모방하여 20~
60세의 남자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이는 국가가 직접 농민을 지
배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국가는 촌락 단위로 호구 정수 노비의
노동력까지를 조사 파악하여 수취와 역투 징세의 확립을 기하였
다. 이러한 사실은 신라의 민정문서인 “장적”에서 알 수 있다.
IV. 발해
1. 발해의 건국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합처 698년에 동모산에
서 세운 국가이다. 고구려 유민들이 지배층이 되고, 말갈족을 지배
한 발해는 문왕(737-793) 때 수도를 상경 용천부로 옮겨 정치제도
를 정비하였다. 선왕(818-830) 때에는 당의 제도를 도입하여 중앙
집권적인 통치체제를 완비하여 발해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2. 발해의 관제
(1) 중앙행정조직
중앙행정조직은 당의 제도를 모방하여 3성 6부제를 갖추어 권위
를 보였으나, 실제로는 상당한 독자성을 지니고 있었다.
먼저 3성으로는 정당성 선조성 중대성을 두었다. 정당성은 장
관인 대내상이 선조성과 중대성의 장관인 좌우상 위에 위치하는 수
상격이었으며, 정책 집행, 백관 감독 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선
조성은 좌상을 장관으로 두고, 저책 입안 왕명 심의 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중대성은 좌상을 장관으로 두고 정책과 교서를 작성하
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다음으로 정무를 분장한 이 호 예 병 형 공에 해당하는 6
부로 충 인 의 지 예 신의 유교적인 명칭을 사용하여 그 고
유성을 보였다. 6부 중에서 충 인 의부는 선조성의 장인 좌상이
감독하고, 지 예 신부는 중대성의 장인 좌상이 감독하였다.
3성 6부의 정치체제 아래서도 중요한 사건은 모든 귀족이 정당성
에 모여서 의결하여 결정하였다.
그 밖에, 특수 기관으로서 감찰기관인 중정대, 외국 사신 접대기
관인 사빈사, 도서기관인 문적원, 교육기관인 주자감을 두었다.
(2) 지방행정 조직
지방행정조직은 5경 15부 62주의 행정구역으로 정비되어 있었다.
수도인 상경을 중심으로 중경(길림 경화), 동경(간도 훈춘), 남경(성
남 함흥), 서경(통화성 임강)의 5경이 있었으며, 이 밖에 중요한 도
시가 사방에 건설되어 15부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부에는 도독(또는
절도사)을, 주에는 척사를 두어 다스렸다.
이상으로 본 장에서 서술한 삼국 및 발해의 주요 행정제도를 정
리, 비교해 보면 다음 표와 같다.
삼국 및 발해의 행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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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15.07.11
  • 저작시기2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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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76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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