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남한 역사학계의 한국사 시대구분과 사회성격 논의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시대구분의 의의

2. 일제시기의 시대구분
1. 식민사학
2. 반제민족사학

3. 8.15해방 직후의 시대구분

4. 1950년대의 시대구분

5. 1960,70년대의 시대구분

6. 1980년대의 시대구분

7. 시대구분론의 진전을 위하여

본문내용

는 세계사적인 단계적 제시대의 조정(措定)에 있고, 아시아적 생산양식 이후의 페르시아, 고전고대적 생산양식 이후의 그리스로마의 역사를 문제로 삼지 않은 것”(미야지마)이라 하여 아시아사회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인식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학계의 일반적인 연구경향과는 시각을 크게 달리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거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윤한택은 전(前)자본주의사회의 성격(사회과학개론, 1986년)에서 그러한 인식은 서구사회와 아시아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대비하는 견해라고 비판하였다.
즉 그것은 서구가 제국주의로 발전한 반면 아시아는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역사적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계급해방인간해방이라는 동시에 달성해야 할 목표와 민족해방투쟁을 결합하는 이론적 고리를 갖지 못하며, 그 때문에 미래사회를 창조해가는 과정에서 각 계급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한택은 또한 지금까지는 전근대사회를 논의할 때 생산수단으로서 유일하게 토지만을 고려했으며, 그에 따라 고대사회와 중세사회의 차이도 오직 직접생산자에 대한 경제외적 강제의 차이(노예와 농노)에서만 찾았으나, 계급을 발생시키고 잉여노동을 창출한 최초의 생산수단으로는 토지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그는 농경제초기술시비기술 등의 총체적 발전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결코 토지가 잉여노동을 창출하는 수단이 될 수 없었으며, 어원분석을 통해 고대사회의 기본적인 생산수단은 잉여노동의 형태로 이자를 낳는 생산수단인 곡물이나 가축의 종자 같은 것이며, 직접생산자도 일체의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말하는 도구로서 부려지는 그러한 의미의 노예는 아닐 것이라고 추론한 것이다. 그의 견해는 고대사회와 노예제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이나 실증적인 해명이 요구된다.
이와 같이 1980년대에 들어 ‘진보’와 ‘실천’을 표방한 새로운 연구경향이 대두되고 있었지만 시대구분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은 시도된 바가 없었으며, 주류를 이루는 시대구분은 여전히 이전의 것을 답습하였다.
1982년에 개정된 인문고등학교용 국정교과서는 고대-중세(고려)-근세(조선)-근대(조선 후기 이후)-현대(815해방 이후)로 시대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유신체제 아래서 나온 국정교과서의 시대구분 가운데 고려를 중세로, 조선을 근세로 바꾼 것일 뿐 시대구분의 기준과 원칙에 전혀 일관성이 없다.
1990년에 개정신판을 낸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의 시대구분도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지배세력의 변화를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1988년에 나온 변태섭의 한국사통론은 한국사의 자율적이고 내재적인 사회발전을 기준으로 원시-고대(고조선~통일신라)-중세(고려)-근세(조선)-근대(대원군 이후)-현대(815해방 이후)라는 시대구분을 제시하였으나, 그가 기준으로 삼은 사회발전이란 합법칙적 역사발전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7. 시대구분론의 진전을 위하여
1945년 이후 남한 역사학계의 시대구분논의는 시대구분 부재라 할 만큼 내용이 빈약하다. 1967~68년에 걸쳐 시대구분논쟁이 조직된 적이 있었으나, 논자마다 다른 시대구분의 기준과 원칙을 확인만 하였을 뿐 어떤 합의나 결론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개설서류는 여전히 왕조별 시대구분법이나 3시대구분법, 혹은 두 가지의 구분법을 혼합한 방법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회구성체론에 의한 시대구분법을 수용하더라도 구체적인 기준이나 시기설정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으며, 각 시대의 사회성격 역시 일치된 견해가 없다. 노예제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개념은 서로 다른 것이다. 봉건제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설정시기와 내용도 천차만별이며, 토지국유론과 사유론을 둘러싼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전근대사회의 성격과 시대구분에 일치된 견해가 없는 것은 우선 축적된 실증적 토대가 미흡하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이론상의 문제와 그에 따른 시대구분 기준과 원칙의 불일치 때문이다. 이러한 불일치나 논란도 결국 통일된 인식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겠으나, 시대구분과 관련하여 전제되어야 할 점은 시대구분의 과제가 지나간 역사의 체계적 인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오히려 현실사회의 역사적 단계와 모순구조의 해명, 나아가 미래사회를 전망하는 데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최근에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수용한 시대구분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전근대사회의 국가의 성격과 역할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과도 관련하여 전근대사회의 성격과 시대구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세계사적 보편성과 한국사의 고유한 측면을 통일적으로 인식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참고문헌
강만길,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창작과비평사, 1978.
강진철,한국사회의 역사상, 일지사, 1992.
민두기 편,중국사시대구분론, 창작과비평사, 1984.
이만열,한국근대역사학의 이해, 문학과지성사, 1981.
이우성강만길 편,한국의 역사인식상하, 창작과비평사, 1976.
한국사연구회 편,한국사학사의 연구, 을유문화사, 1985.
한국경제사학회 편,한국사시대구분론, 을유문화사, 1970.
근대사연구회 편, 총론:헌국 근대역사학과 조선후기사 연구,한국중세사회 해체기의 제문제상, 한울,1987.
김용섭, 우리나라 근대역사학의 발달 2,문학과지성1972년 가을호.
김용섭, 한국일본에 있어서의 한국사서술,역사학보31, 1966.
방기중, 백남운의 역사이론과 한국사인식,역사비평1990년 여름호.
윤한택, 전자본주의사회의 성격,사회과학개론, 백산서당, 1986.
이기백, 한국사의 시대구분 문제,한국사연구입문, 지식산업사, 1981.
이세영, 현대 한국사회의 동향과 과제,80년대 한국인문사회과학의 현단계와 전망, 역사비평사, 1988.
한국역사연구회 편, 총론:한국사인식의 방법과 과제,한국사강의, 한울, 1989.
木村誠, 조선전근대의 시대구분,새로운 한국사연구입문, 돌베개, 1983.
永原慶二 편, 조금안 옮김,마르크스주의 역사과학입문, 한울, 1986.

키워드

논문,   남한,   역사,   시대구분,   식민사학,   국사,   한국사,   역사학
  • 가격3,000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5.12.29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017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