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고대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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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경과 고대정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선행학습
3. 이집트왕의 명령과 하나님의 세계정치
4. 다윗 : 고대정치 길라잡이
5. 앗수르 왕의 조서와 명령
6. 바벨론 왕의 조서와 명령
7. 페르시아 왕의 조서와 명령
8. 헬라 왕의 조서와 명령
9. 로마 황제,총독의 조서와 명령
10. 결론

본문내용

었습니다. 안티오쿠스 3세를 이어 왕이 된 안티오쿠스 4세는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을 헬라화 시키고자 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전도 세속화 시키고자 하였습니다.
B.C.168년부터는 헬라 문화를 심는다는 구실로 할례와 안식일을 금지시켰고, 율법서를 불태우며, 강제로 돼지고기를 먹이는 등 유대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B.C. 167년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참배하게 하고 이 명령을 어기면 가차없이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큰 폭동이 일어나고 마카비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유대는 마카비 혁명을 통해 예루살렘을 정화시키고 다시 독립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B.C.141년에 유대는 셀루커스 왕조로부터 완전히 정치적으로 독립을 공포하였으며 하스몬 왕조를 열고 B.C.63년 로마의 지배로 넘어가기까지 독립국가로 지내게 됩니다.
9. 로마 황제,총독의 조서와 명령
법의 민족 로마의 종교 민족 유대를 위한 정치 - 헤롯 왕
로마의 법은 그들의 민법을 보완해서 국제법 체계, 즉 만민법을 수립했고 그 법을 확대하여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만들게 됩니다. 로마 입장에서 유독 종교 민족인 유대민족을 다스리는 것이 껄끄러웠습니다. 로마 역사를 보면 수시로 유대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통치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종교민족을 통치하는 분봉 왕으로 헤롯을 지명하고 통치합니다. 헤롯의 아버지는 개종한 이두매 사람으로 하스몬 왕조의 지방장관을 지내게 되는데 요한 힐카누스의 두 손자의 권력다툼을 계기로 B.C. 63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과 협정을 맺어 유대를 로마의 속국으로 만들고 자신은 분봉 왕이 됩니다. 헤롯은 타고 난 정치가였고 성전 건축과 여러 가지 건축물을 건축한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그 성격이 잔인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베들레헴 인근의 2살 이하 아기들을 모두 죽이는 잔인함을 보여줍니다.
헤롯가문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정치적으로 입지를 튼튼히 했는데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죽이기도 합니다.
율리어스 카이사르의 조서(유언장) -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가는 길을 연 조서인 율리어스 카이사르의 조서(유언장)는 로마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리어스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나서 그 유언대로 양자로 지목된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게 되고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됩니다. 율리어스
카이사르의 마지막 조서가 된 그의 유언은 오랜 전통의 공화정 로마를 제정 로마로 만들었고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헌 자)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명령
가이사 아구스도, 즉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조서는 예수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으로 만드는데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지엄한 명령으로 호적하기 위해 그들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간 것은 ‘성경대로’가기 위함입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이 목자가 되리라(마2:6)”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과 빌라도 총독이 결정
산헤드린 공회는 그 당시 유대의 가장 힘 있는 정치단체였습니다. 유대 백성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따르게 되자 당시 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의 기득권층 인사들에게 예수님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침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고발하자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줍니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여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마27:1-2)
총독 빌라도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의 속셈을 알고 있었고 민중들이 좋아하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가 민란을 카드로 총독을 압박하자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전에 하신 말씀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셨습니다.
“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조서 - 다신교에서 기독교로
A.D. 64년부터 313년까지 249년간 계속되었던 로마 제국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 직전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헬레나의 영향으로 콘스탄트누스 황제는 황제가 된 그 다음해인 A.D.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는 조서를 발표하게 됩니다.
A.D. 313년 서방 정제 콘스탄티누스는 동방 정제 리키니우스와 밀라노에서 영수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합의해서 발표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입니다.
칙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 제국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어떤 종교를 믿든지 완전한 자유가 인정된다.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서로 화해하고 융합하자.”
이 칙령의 발표 후 콘스탄트누스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몰수한 교회의 재산을 모두 돌려주고, 경매에 의해 교회의 재산을 매입한 자들이 다시 교회에 돌려줄 때 발생하는 손해비용은 국가가 갚아주겠다고 밝혔습니다.
콘스탄트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에 이어, A.D. 392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는다는 조서를 발표하게 됩니다.
10. 결론
기독교는 지난 수 천년동안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우리의 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언 듯 보기에 세계의 역사와 정치가 한 왕의 조서, 명령에 따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이 섭리가 있고 그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어 가는 세계역사를 보게 됩니다. 앞으로 진행될 세계의 역사와 정치 또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으며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세계를 향하여 기도의 손을 놓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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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1.12
  • 저작시기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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