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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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학생운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문제제기

2. 미군정기의 학생운동

3. 4 19시기의 학생운동
(1) 학원민주화로의 후퇴
(2) 운동의 개량화 - 국민계몽운동, 신생활운동
(3) 운동의 진전 - 통일논의의 전개

4. 6 3운동시기의 학생운동

5. 유신체제하의 학생운동
(1) 유신체제 구축기 - 3선개헌반대와 교련반대투쟁
(2) 유신체제 전기 - 10 2투쟁과 민청학련투쟁
(3) 긴급조치 9회 시기의 반유신투쟁

6. 80년대의 학생운동

7. 1990년대 초기의 학생운동

본문내용

대한 성격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80년대 학생운동은 이념적 지향을 확고히 하였다. 우리나라 변혁운동이 외세로부터 해방되어 민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나아가 조국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이 광범하게 공유된 것이다. 80년대 초반 민족주의·민주주의·민중 주체의 과제를 단순히 나열하던 것을 험난한 반외세반독재투쟁의 전개를 통해 극복하고, 민족해방과 민중민주주의는 하나이고 이를 전체 애국민중이 단결해서 진행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나아가 민족해방운동의 올바른 전통 속에 변혁운동을 세우려는 노력은 전체민주화운동내에 모범을 창출하게 되었다.
둘째, 학생운동의 조직전만을 올바르게 세우게 되었다. 81년의 '전민학련', 84년의 '민추위'가 음모적이고 하향적인 조직운동을 시도한 이후, 86년의 '구학련'은 강령·규약을 갖춘 대중조직을 구상하고 적절한 시기에 반합법적 형태로 공개하고자 시도했다. 물론 만연된 분파주의로 말미암아 좌절되었지만, 이러한 경험은 87년에 이르러 학생대중조직과 밀착하여 분산된 다핵의 지도중심을 건설하고, 학생대중운동의 발전과 긴밀하게 결합하여 조직운동을 시도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는 선진적 학생운동활동가조직을 별도로 구성하여 학생대중조직의 외부나 상부에서 침투·지도하는 방식보다 발전된 형태의 노력이라 하겠다.
셋째, 80년대 학새운동은 전국적 조직을 건설하거나 이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전체변혁운동의 어느 부분운동도 전국적 전망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하여 학생운동은 전국적 대중조직화를 시도하였다. 84, 85년의 '전학련'은 각 대학 총학생회장의 협의체 수준의 내용에 전학련의 형식을 부과한 것이고, 86년의 '민민학련', '애학투'는 소수 선진학생 운동가의 비공개 연대를 골간으로 반합법 공개연합체를 건설한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87년의 '전대협'은 대학대표자협의회라는 내용과 형식을 통일하고 전국적 연합을 지향한다는 것을 천명하여 주목된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부터는 지역과 전국적인 조직화 수준에 조응하여 지역연합체-전국협의체 혹은 지역연합체-전국연합체의 형식으로 전국적 학생운동조직건설을 목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80년대 학생운동은 전체 변혁운동의 선봉대적 위치를 실천의 과정에서 획득하였다. 80년대의 패배의식을 극복한 것도, 85년 2·12 이후 반독재투쟁의 고양도, 86년 이후 반외세투쟁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도 모두 학생운동의 정치투쟁력에 근거한 것이다. 학생운동의 선도적이고 비타협적인 정치투쟁은 전체 변혁운동에서 탄압기를 가르는 횃불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다만 87년 하반기에 이르러 학생운동이 선봉대적 역할과 후비대적 역할을 통일하지 못하여 대중투쟁의 후미에 머무르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차후 극복되어야 할 것이었다.
다섯째, 학생운동은 전체 애국민주운동세력을 단결시키는 교량자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80년 민주세력의 단결된 연합건설에 실패한 과오는 그 후 교훈으로 남아 단결과 연합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학생운동의 교량자적 역할을 촉구하여 왔다. 85년 미문화원농성을 통해 애국민주연합의 단초를 창출하고, 이러한 성과는 87년 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학생운동은 지역차원의 민중운동의 연합체건설에도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고, 나아가 전체 변혁운동의 불균등한 발전을 극복하는 데에도 기여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80년대 학생운동은 학생대중과 전체 민중의 대중투쟁의 전개에 대한 교훈을 획득하였다. 80년대 초반 학생대중투쟁과 선도적인 정치투쟁을 분열적으로 인식하는 초기적 혼돈을 겪었으나 이는 창조적으로 극복되었다. 자주·민주·통일 지향의 총노선하에서 학생운동은 전개하기에 이른 것은 큰 발전이다. 그러나 학생대중의 근본요구가 사회제도의 억압을 자주적으로 타파하고 민주사회를 건설할 때에만 궁극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은 여전히 확고히 견지되어야 한다. 선도적인 정치투쟁과 대중투쟁은 결국 하나의 주체가 수준과 목표를 달리하여 전개하는 투쟁을 현상적으로 파악한 것에 불과함을 더욱 분명히 자각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을 앞질러 구호를 남발하다가 결정적 시기에 대중의 후미를 추종하는 편향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실천적 경험과 반성과 자기정리를 경과해 온 80년대 학생운동은 앞으로 전체운동의 사상적 진로를 분명히 하여 이론적 향도를 제시하고 투쟁과 조직의 성숙한 전형을 창출함으로써 학생운동사는 물론 전체민중이 자주적으로 역사의 주인이 되어가는 역사에 한 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7. 1990년대 초기의 학생운동
90년대의 학생운동은 거대 이데올로기보다 미시 권력과 개인적 욕망의 표출이, 정치 경제적 체제보다는 과학과 정보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리라는 것,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윤리관이 큰 변화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80년대 후반기부터 90년대의 학생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논리적 과학적 사고로 보다 입체적인 상황을 빚어내고 질적 삶을 중요시 한다. 또한 비합리적 희생과 손해를 요구하는 집단주의적 가치관을 거부하며,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기존의 학생운동이 국가, 계급, 성별 등의 사회적인 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면에 90년대의 학생운동은 환경, 정보통신, 교육, 여성, 문화등의 삶의 질을 추구하려는 대중에게 선호, 부합하는 이론들을 제시한다.
90년대의 학생운동 상황은 다양한 이슈의 접근으로 충분한 지적성찰이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들은 앞으로 대학사회에서 모색, 검토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참고서적
1. 최혜월(1988) : "미군정기 국대안반대운동의 성격” 역사비평서의 논문
2. 김동춘(1988) : "민족민주운동으로서의 4·19시기 학생운동” 역사비평서의 논문
3. 이종오(1988) : "반제반일민족주의와 6·3운동” 역사비평서의 논문
4. 서중석(1988) : "3선개헌반대, 민청학련투쟁, 반유신투쟁” 역사비평서의 논문
5. 김민호(1988) : "80년대 학생운동의 전개과정” 역사비평서의 논문
6. 김석형(1991) : "민청학련, 민학련, 진민학련,야비-전망 논쟁” 우리사상서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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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1.21
  • 저작시기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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