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미륵신앙의 산실, 모악산 '금산사'
2. 금산사의 개요
3. 미륵신앙이란
4. 진표율사
5. 혜덕왕사
6. 수문대사
7. 금산사의 불교사상
참고자료
2. 금산사의 개요
3. 미륵신앙이란
4. 진표율사
5. 혜덕왕사
6. 수문대사
7. 금산사의 불교사상
참고자료
본문내용
축이 교차하는 이러한 도량배치는 금산사가 불타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종파에 치우침이 없이, 선과 교가 공존하며 모든 사상과 내용을 포용하고 있는 대승불교의 신앙체계를 모두 갖춘 종합사찰임을 표현하고 있다
7. 금산사의 불교사상
금산사를 중심으로 불교사상적인 접근을 해보면 우선, 통일신라시대의 진표율사에 의한 금산사의 중창과 미륵전의 건립은 이 지역이 미륵신앙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후, 고려 문종 때 혜덕왕사에 의해 86동 43개 암자의 대가람으로 중수되었고, 조선시대에 마침내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부처와 보살들을 모두 수용한 대적광전을 세우게 되고 한국불교의 특징인 통 불교적 경향을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금산사는 대적광전에 화엄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의 삼신불을 봉안하여 정토사상의 연화장세계를 그리고 있다. 또한 금산사는 청정한 불국토에 가기위해서 자기완성과 이웃구제의 원을 세워 끊임없이 정진하는 보살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사찰이며, 1700년대에는 환성지안스님에 의해 수 천명의 신도가 참여한 화엄대법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사회가 안정되었을 경우에는 십선을 닦아 도솔천에 오르려는 미륵상생신앙이 발전하였고 사회가 불안정하면 미륵보살에 의해 구원을 기원하는 미륵하생신앙이 발전하게 된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전면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다. 민중에 의한 미륵신앙은 하생신앙을 토대로 한 새로운 종교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일제치하에서 우리 민족에게 애환을 달래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구심점 역할도 했었지만, 순수한 미륵신앙에서 벗어난 혹세무민하는 종교활동으로 변질되어 나타나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1960년대 태공월주스님에 의해 미륵사상과는 거리가 먼 의사 미륵신앙이 번성하여 사회적 폐단이 이는 것을 보고 불교 본래의 자세로 되돌아갈 필요성이 제기되어 1966년 `미륵정심회'를 조직하였다. 태공월주스님이 그의 제자인 도영, 도법, 평상, 원행스님 등과 함께 십선행을 권장하며 “미륵 바르게 알기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미륵신앙을 표방한 몇몇 신흥종교들이 정통의 미륵신앙에서 벗어나 있는 현실을 보면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자료
http://www.geumsansa.org/buddhism/hye.asp
http://www.koreasanha.net/san/infor/temple_3.htm
7. 금산사의 불교사상
금산사를 중심으로 불교사상적인 접근을 해보면 우선, 통일신라시대의 진표율사에 의한 금산사의 중창과 미륵전의 건립은 이 지역이 미륵신앙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후, 고려 문종 때 혜덕왕사에 의해 86동 43개 암자의 대가람으로 중수되었고, 조선시대에 마침내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부처와 보살들을 모두 수용한 대적광전을 세우게 되고 한국불교의 특징인 통 불교적 경향을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금산사는 대적광전에 화엄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의 삼신불을 봉안하여 정토사상의 연화장세계를 그리고 있다. 또한 금산사는 청정한 불국토에 가기위해서 자기완성과 이웃구제의 원을 세워 끊임없이 정진하는 보살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사찰이며, 1700년대에는 환성지안스님에 의해 수 천명의 신도가 참여한 화엄대법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사회가 안정되었을 경우에는 십선을 닦아 도솔천에 오르려는 미륵상생신앙이 발전하였고 사회가 불안정하면 미륵보살에 의해 구원을 기원하는 미륵하생신앙이 발전하게 된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전면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다. 민중에 의한 미륵신앙은 하생신앙을 토대로 한 새로운 종교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일제치하에서 우리 민족에게 애환을 달래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구심점 역할도 했었지만, 순수한 미륵신앙에서 벗어난 혹세무민하는 종교활동으로 변질되어 나타나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1960년대 태공월주스님에 의해 미륵사상과는 거리가 먼 의사 미륵신앙이 번성하여 사회적 폐단이 이는 것을 보고 불교 본래의 자세로 되돌아갈 필요성이 제기되어 1966년 `미륵정심회'를 조직하였다. 태공월주스님이 그의 제자인 도영, 도법, 평상, 원행스님 등과 함께 십선행을 권장하며 “미륵 바르게 알기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미륵신앙을 표방한 몇몇 신흥종교들이 정통의 미륵신앙에서 벗어나 있는 현실을 보면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자료
http://www.geumsansa.org/buddhism/hye.asp
http://www.koreasanha.net/san/infor/temple_3.htm
추천자료
- 사회・문화・역사적 측면에서 고찰한 과거이민현상과 현재이민현상의 비...
- 대학생들의 놀이문화 실태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찰
- [문화 사회학] 경제변동과 자살과의 연관성 고찰
- [인터넷 문화]인터넷 카툰 고찰
- 한국의 초등학교 교직문화와 학교장의 결합기제에 관한 고찰
- 러시아 문화의 현주소와 그 시사점에 대한 고찰
- [조사방법론] 대학생의 음주문화에 대한 고찰
- 장아찌의 역사적 ․ 문화적 고찰
- 여가문화(생활)의 현대적 의미와 대중화에 관한 고찰
- 사도 바울의 문화 선교 전략에 관한 고찰
- 한국 비파형 동검 문화에 대한 고찰
- 국내 다문화 가정의 현황 및 사회통합 전략 고찰
- 기녀 문화에 관한 조사와 현대적 수용 방안에 관한 고찰
- 다문화 교육(多文化敎育)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한 고찰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