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와 패스티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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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패러디
1.개념
2.시대별 용법과 정의
3.패러디와 혼용되는 용어들
4.패러디와 관련된 연계성
5.문학에서의 패러디

Ⅱ.패스티쉬
1.정의
2.패스티쉬의 발생
3.제임슨과 린다
4.패스티쉬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체성

Ⅲ.패러디와 패스티쉬의 차이점

본문내용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왜냐하면 혈통상으로 나는 한국인이며 한국은 나의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또한 어느 누구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미국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모든 교육을 여기서 받았으며 미국의 많은 점들을 좋아하니까요. 근본적으로 나는 둘 다(한국인이자 미국인)입니다. 오로지 한국인이라거나 미국인이 아니란 말이지요.
위의 화자는 솔직하게 자기 정체성의 양가성을 시인하며 어느 한쪽을 숨기거나 억압하려 하지 않는다. 만일 이 이야기를 동화주의자가 들었다면 이 화자는 실패한 이민의 산물이며 민족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을 것이다. 또한 다른 문화다원론자는 원래의 문화를 보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미국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미국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곧 고유의 문화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못 박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화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양면성을 포용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혼합된 정체성은 모더니즘인 사고 방식에 젖어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 반응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나는 미국의 많은 점들을 좋아한다’하고 말하면 그것은 곧 ‘나는 한국 것은 싫어한다“하고 받아들인다. 이는 모더니즘적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에 기인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런 훈련된 불능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 방식은 강제로 분리되고 반대화된 개념들을 의심하며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동안 경직된 사고에서 탈피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경직된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에 젖어 있기 때문에 포스트 모던한 사고 방식에 많은 거부감을 느낀다. 많은 포스트모던 예술이 새로운 것의 창조로 받아 들여지지 않듯이 패스티쉬된 정체성도 그 나름대로의 정당한 정체성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동화주의자가 미국적인 정체성만을 주장하거나 민족주의적 문화다원주의자가 한국적인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은 한국적인 것과 곧 반대라는 등식을 세우고 어느 한쪽을 억압하기 쉽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 방식은 어느 한쪽도 억압하지 않고 이율배반적인 복합적인 정체성이 표면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의 한 특징인 표피성이라 하겠다.
Ⅲ.패러디와 패스티쉬의 차이점
패러디는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작가가 재구성하여, 기존의 텍스트가 가지고 있던 지향점을 작가가 임의로 바꾸는 방식인데, 기존 텍스트가 선점하고 있는 효과와 작가의 새로운 효과가 합쳐져 새로운 차원의 효과를 낳는다. 이것은 작품외적 자아가 작품에 개입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패러디는 기존의 글쓰기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메타픽션을 환기한다. ‘메타’라는 접두어는 다른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언어를 의미하는 바, 메타언어는 대상적 언어에 대해 시니피앙의 역할을 하는 언어이며 그 대상적 언어는 메타언어의 시니피에가 된다. 여기서 비롯된 메타픽션은 기존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또 하나의 텍스트를 창작하는 글쓰기와, 시인의 목소리를 개입시켜 텍스트의 창작과정에 대해 진술하는 글쓰기를 동시에 의미한다. 이 중에서 전자의 글쓰기는 반드시 원텍스트를 전제로 성립되는 패러디와 관련이 깊으나 후자의 글쓰기는 패러디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 어쨌든 메타픽션은 현실을 모방하는 전통적 의미의 글쓰기가 아니며 글쓰기의 진실성과 허구성을 응시하는 언어에 대한 자의식에 기반한 글쓰기이다. 더 이상 현실을 재현할 수 없어 제 모습을 되돌아보는 이 자기반영적 글쓰기야말로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이고 이것은 곧 패러디의 전략과 통한다.
기존의 텍스트를 끌어다 쓰는 이와 같은 작업이 극단적으로 진행될 때 시인의식이나 원본성창조성의 개념은 철저히 와해된다. 패스티쉬의 입지점은 여기에 마련된다. 패스티쉬는 비판력이 없는 닮음 혹은 모방을 특징으로 한다. 한 텍스트는 물론 수많은 텍스트들로부터의 모방이자 평면적으로 흡수되는 지향없는 ‘닮음’이기에 비판성풍자성동기성은 결여되고 상대적으로 유희적 기능이 강하게 부각된다.
제임슨의 논법대로라면 언어적 규범이 존재할 때만 개인적 스타일의 독특성이 독특성으로 인식되고 이런 상황에서만 과거 원전의 풍자적 패러디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 규범이 소멸하고 문체의 이질성과 다양성만 남아 있을 때 그 독특성이 더 이상 독특성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 경우 패러디 대신 패스티쉬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제임슨의 지론이다. 그가 정의한 패스티쉬는 결국 중성모방으로서 패러디의 숨은 동기나 풍자적 충동, 웃음이 없는 공허한 패러디이며 스타일상의 가면이고 내부 깊이가 없는 표피적 모방, 곧 죽은 언어로 얘기하는 것이다. 패러디는 원전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는, 그래서 원전을 풍자적으로 변형시키는 기법이다. 그러나 패스티쉬는 주체가 소멸한 만큼 원전에 대해 풍자적 의도가 없는, 속이 텅 빈 모방으로서 중성모방이며 여기저기 원전들을 차용하는 짜집기로서 혼성모방이다.
패러디와 패스티쉬는 다 같이 모방대상이 과거 텍스트들이다. 그러나 패러디는 그 원전들과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패러디문학은 자기 반영적이고, 자기 반영적인 것은 자기 반성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반영 그 자체에 반성이 이미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스티쉬는 그 원전들은 뒤섞어 조립하거나 그대로 모방하는 기법이다.
*참고*
이미란, 한국현대소설과 패러디, 국학자료원, 1999
권성우, 비평과 권력, 소명출판, 2001
김준오, 현대시의 환유성과 메타성, 살림, 1997
정끝별, 패러디시학, 문학세계사, 1997
나희경, 라캉의 심리비평 용어 《21세기 문학》, 송인서적, 2002 가을호
최인훈, 최인훈 전집 8「놀부뎐」,문학과 지성사, 1994
최인훈) 최인훈 전집 9「옹고집뎐」p168,문학과 지성사 , 1994
윤영수, 국문학논집 19호,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03.
한겨레 어문학회, 한겨레 어문연구 제1집「패러디 소설과 이야기 소설학」,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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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2.22
  • 저작시기2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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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5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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