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성 육왕탑을 중심으로 본 4, 5세기 고구려 불교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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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聖王’의 존재에 대한 比定
Ⅲ.廣開土大王 代의 佛敎 발전
Ⅳ.廣開土大王의 阿育王塔 건립 목적
Ⅴ.결론

본문내용

나 고구려 불교사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어서 이러한 점들이 제대로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고구려 불교사에 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자료>
탑파건축
탑파(塔婆)는 본래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만든 축조물로, 인도에서는 범어로 ‘stupa'라 하여 이를 한문으로 스투파라 음역한 것이며, 탑파는 팔리(Pail)어의 ’thupa'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탑파는 일반적으로 탑이라 하는데 그 축조 재료에 따라 목탑(木塔), 전탑(傳塔), 석탑(石塔), 모전석탑(模傳石塔), 청동탑(靑銅塔), 금동탑(金銅塔)으로 나뉜다. 고려에는 토탑이 있었음이 《三國遺事》제3권, 탑상 요동성 육왕탑조의 “삼층으로 쌓은 토탑”이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기록이 고구려 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며, 이 ‘요동성육왕탑’은 7층 목조탑이었다.
탑터로는 정릉사지, 상오리사지, 원오라사지, 금강사지의 탑터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팔각형이다. 정릉사의 탑은 기단 폭이 고려척으로 50자(17.5m)이며, 후일 전체 높이 약 40cm되는 팔각형 5층 목탑으로 복원되었다. 상오리사지의 탑과 원오리사지의 탑은 모두 팔각형기단을 형성하였는데, 상오리사지는 암반을 또아 팔각형의 가단을 만들고, 그 안쪽에 깬 돌들을 깐 방형의 구획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혹 사각형목탑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또 금동제 풍탁(風鐸)이 발굴되어, 처마 끝에 풍경을 매달았음을 알 수 있다. 요동성무덤 평남 순천시(順川市) 용봉리(龍鳳里)에 있는 고구려 때의 벽화고분로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서쪽으로 기운 남향의 옆방 있는 무덤[有側室墳]이다.
에 그려민 요동탑의 모양은 바로 이런 목조탑의 모양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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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여, 「고구려 불교사 연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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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미, 「중국의 아육왕탑 전승 연구」『동양고전연구 제28집』동양고전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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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역사 속의 한국불교』, 역사비평사, 2002
주경미,『중국고대 불사리 장엄 연구』, 일지사, 2003
주남철,『한국건축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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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9.07.02
  • 저작시기200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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