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에 대하여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식민주의 역사관의 배경과 성격
I. 日本의 한국사 연구
1). 에도시대(17c-18c)의 한국사 연구
2). 20C초 한국사 연구의 본격화
ll. 식민사관의 내용
1). 타율성 이론
2).정체성 이론

* 식민주의 사관 비판
1. 반도적 성격론에 입각한 타율성 이론 비판
2. 정체성 이론 비판
3. 당파성론의 새로운 인식
lll. 결론

본문내용

속해서 유입하는, 자유로왔던 농노에 대하여 여기에 일정한 수공업자 (동시에 상인을 겸한다)의 동업 조합이 이루어진다......이들이 봉건 적 도제제도(길드)의 상업 및 수공업에 종사하는 것이다" 했고, 다음 토지 문제에 있어서는 고려말의 사전개혁이 "토지 그것에 대한 개혁 이 아니라 농민의 주거와 이동을 영구히 일정한 토지에 예속한 것이 다. 즉 이것은 거주지의 이동의 자유를 주지 않는 농노 제도의 하나의 특징인 것이다" 하여 사전법으로 중세 사회 성립의 중요한 계기로 보 았다.
그는 또 조손 왕조 사회가 농업 노동과 수공업 노동과의 결합에 기초 한 자연 경제 테제였으며, 그것이 봉건 사회 존립의 제 1의 조건이었 다 하고, 최대의 토지 소유자인 국가의 봉건적 토지 소유와 그것의 농 민에의 분배는 봉건 국가가 그 봉건적으로 소류되어 있는 토지에 결부 되어 있는 농노전부의 개인적 경제에서 잉여 경제를 빨아들이고 또 그 것을 스스로 점유하기 위한 물질적 기초를 그들에게 준 것이다 하였 다.
☞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합리화 정당화하는 정체성 이론 - 그리고 이른바 아시아 국가의 정체현상이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고정되었고, 갖은 수탈로 자본주의 맹아마저 짓밤아버린 사실을 은폐하고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려는 이른바 "정체성"이론은 사라져야 할 것이 다.
3. 당파성론의 새로운 인식
- 3. 1운동이후 일인들의 당파성론 정립은 조선 건국에서 말기까지의 역사가 모두 당파 성으로 꿰어져 버렸다. 이광수등 일부 조선 지식인들의 하수인적 역할을 통해 일인들의 악의에 찬 당파성론은 손쉽게 일반인들의 뇌리에 심어져갔다.
이런 까닭에 조선의 경제, 사회, 사상 등에 비해 조선의 정치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평가 되어왔다. 이제는 조선시대의 정치사를 종래의 편견에서 벗어나 새로이 인 식, 체계화 해야 될 것이다. 500년이나 되는 조선시대의 정치를 당쟁이란것 하나로 묶 는 것 자체가 매우 비역사적 인 것이다.
5세기나 되는 긴 시간의 정치사는 의당 몇 단계로 나누어 파악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 다.
<1> 이중환 "택리지"
- 왕조초기 15세기 의결권을 가지는 삼공, 집행기느의 육경, 언론기능의 사간원, 사헌 부 등 3자의 관계가 관료체제의 운영의 중심.
16세기 체제는 운영상 질적인 변화가 있었다. "이조전랑"에게 언론기관인 삼사관원에 대한 인사권을 일임 시켰다. 이조전랑에게 삼사를 규제, 조정하는 권한이 부여된 것 은 기능상 삼공에 못지않는 비중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한 이조전랑의 직은 명덕을 겸비한 신진들 사이에서 명예를 걸고 후임을 천거하여 이어가도록 한것은 붕당에 토 에를 둔 사림사회의 공론을 존중하여 그것을 정치에 실제 직접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체제는 영조의 탕평책의 실시로 정치 운영체제가 크게 바뀌었다. 이조전 랑의 삼사 규제권 폐지로 권력이 비변사 대신에 집중되고 언관이 쇠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정치 구조 아래서 삼공, 육경의 권력이 비대해짐에 따라 벌열세력 형 성의 온상이 마련 되었다. 벌열세력의 태동은 영, 정조 대의 강력한 왕권 아래서는 표면화 되지 못하였지만, 다음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세도 정치란 일족 전제의 기행 적이고, 파행적인 정치 형태를 유발하였다.
"택리지"의 이상과 같은 간략한 논평에 따르더라도 조선 수백년의 정치가 [당쟁]이란 것 하나로 묶여져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2> 안확의 이론 : 진화론적 역사인식에서 조선시대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발달된 단계 라고 규정한 안확은 망국의 원인과 책임을 따진다면 조선시대 역사 자 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엽에 대두한 세도 정치에 있는 것이다 하 였다. 정치권력이 특정한 소수에게 집중된 것이 망국으 원인이었다는 그의 결론이다. 이러한 이해체계는 결과적으로 민족사에서 부정 되어 야 할 범위를 그 만큼 줄이는 소득도 아울러 제공했다.
※ 결론
- 해방 5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식민주의 역사관을 청산하지 못하고 우 리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또한, 일제의 잔재청산. 예를들면 일제 어용 지식인들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및 심판도 아직 이루지지 않고 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한국역사의 정립된 토대위에서 피어나는 우리의 역사 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통일의 시대에 대비한 우리민족 역사의 아 름드리 나무를 심어, 후손들이 역사의 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진정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추천자료

  • 가격1,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0.06.21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2108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