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류협력과 문화 및 학술교류협력, 사회문화교류협력, 남북교류협력과 체육교류협력, 경제교류협력, 남북교류협력과 보훈교류협력, 남북교류협력과 정보기술교류협력, 남북교류협력과 방송교류협력 분석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남북교류협력과 문화 및 학술교류협력, 사회문화교류협력, 남북교류협력과 체육교류협력, 경제교류협력, 남북교류협력과 보훈교류협력, 남북교류협력과 정보기술교류협력, 남북교류협력과 방송교류협력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남북교류협력과 문화 및 학술교류협력

Ⅱ. 남북교류협력과 사회문화교류협력

Ⅲ. 남북교류협력과 체육교류협력
1. 1960년대
2. 1970년대
3. 1980년대
4. 1990년대
5. 1991년 이후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 체육 교류․협력의 특징

Ⅳ. 남북교류협력과 경제교류협력

Ⅴ. 남북교류협력과 보훈교류협력

Ⅵ. 남북교류협력과 정보기술교류협력

Ⅶ. 남북교류협력과 방송교류협력
1. 1950~1970년대
2. 1980년대
3. 1990년대
4. 2000년대
5. 남북한 방송교류상의 한계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
3. 1990년대
1990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통일축구 경기의 녹화중계가 이루어졌으며, 1991년 5월 8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 남북 단일팀 평가전 중계가 이루어졌다. 이는 남에서 북으로 방송을 연결하여 서울과 평양에서 열리는 평가전을 직접 생중계한 사건이며 실질적인 ‘남북 공식교류협력’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방송교류협력의 결과’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1991년에 진행된 남북한 고위급회담 당시 남북기자들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동반취재를 하는 방송교류의 의미있는 사건이 있었으며 1992년 9월 16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 8차 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 3장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가 서명되어 구체적인 교류협력의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특히 언론분야에서는 교류협력과 관련하여 큰 성과가 있었다. 이 부속합의서, 제 2장 ‘사회문화 교류. 협력’ 제 19조에서는 상기 합의서 제 16조를 5개의 세부항목으로 나누어 구체화하였는데, 신문, 라디오, TV 및 출판물을 비롯한 언론분야에서 정보자료의 상호교환, 기술협력, 기관과 단체 및 인권, 공동행사 개최와 저작물 및 예술품의 교환 전시회, 저작물에 대한 권리 보호를 명시하였다.
그러나 언론 협력사업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하에서 누가 언론 협력사업에 참여하며, 어떻게 이 협력사업을 이끌 것인가’하는 점이다.
KBS가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위원회에 남북 이산가족 찾기와 생태계 탐사 그리고 프로그램 제작 등을 공동으로 실시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면서 남북 방송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희망과 관심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MBC는 1992년 말 ‘여명의 눈동자’ 38회분을 비롯하여 교류 가능한 프로그램 목록집을 제시하였고 KBS 또한 자료목록을 준비하여 제공하였다. 이에 북한은 목록을 선별하여 그 중 상당수의 프로그램을 인수해 갔다. 또한 MBC와 KBS는 북한과의 방송교류 및 협력사업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각각 ‘남북방송협력국’과 ‘남북협력담당국’을 신설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북한에서 발행된 자료임에도 정치성, 이념성이 없는 경우 에는 국내 반입 및 일반 활용을 허용하였고 이로써 국내에서 북한영상물의 TV방송이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일련의 가시적인 북한방송 개방의 전단계 조치를 취하였는데, 평양 FM방송을 개방하였고, 국가정보원은 25분 분량의 조선중앙TV 드라마 ‘북방의 겨울’을 방송국에 제공하였으며, 통일부는 북한 TV의 직접수신을 시작하였다. 정부는 SBS에게 북한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KBS에게는 ‘림꺽정’을, MBC에게는 ‘온달전’을 방영토록 승인하였다. 1989년 이후부터 문화예술 분야의 협력 및 왕래 교류에 있어서 여러 차례의 음악회와 예술제, 미술전등이 있었다.
4. 2000년대
90년대에 이어서 북한 위성방송의 수신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전후하여 북한소년예술단, 평양교예단의 공연과 조선 국립 교향악단의 서울 공연이 방송되기도 하였다. 이후 8월과 11월 남북한 이산가족의 상호방문 장면들이 방송되었다.
2000년 6월 13일에서 15일 까지는 ‘남북정상이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만나는 상황’을 방송하였고 남북 모두 생방송의 밝은 화면으로 통제없이 직접 생중계하였다. 이때의 방송교류로 인하여 기술적 교류 및 그 밖의 방송기술 협력이 시도되었고 방송교류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 주었다.
한편 SBS는 29명의 취재진이 ‘2000년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일’에 즈음하여 8박 9일간 북한에 체류하였다. 8시 뉴스시간에 4차례에 걸쳐 평균 7~8분간씩 평양과 지방의 여러 가지 소식을 보도하였다. MBC는 2001년 3월, 기자 2명이 북한에 11일간 체류하면서 주민들의 생활 등을 취재. 보도하였으며, 금강산에서 개최된 노동절 남북 공동행사도 직접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KBS 역시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한의 조선중앙TV에 촬영을 의뢰하여 외주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북녘땅. 고향은 지금’, ‘북한 리포트’등의 프로그램에서 방송하였으며, ‘백두한라’라는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는 KBS제작진들(21名)이 직접 북한에 들어가 북한 조선방송위원회 방송요원들(18名)의 도움을 받아 제작방영하였다.
KBS는 2001년 또한 남북 관계경색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지는 방송교류 사업을 진행하였다. ‘남과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 ‘「보도특집」북한의 관광산업과 IT산업’, ‘여기는 평양입니다.’, ‘백두고원을 가다.’, ‘북한의 10대 문화유산’등을 현지에서 제작후 방영하였다.
5. 남북한 방송교류상의 한계점
분단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진행되어 오던 남북 방송교류는 2000년 역사적인 남북 공동선언이후 급류를 타는 듯 했으나 현재에 와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 하다. 이는 남북방송교류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요인들에 의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과거 1960년대에는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우월하였던 북한의 주도로, 1970년대부터는 급격한 경제적 성장으로 인한 남한의 주도로서 대화가 제기되었으며, 이에 상대방들은 대화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체제가 가진 경직성과 문제점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취재 제한 등의 북한 측 제한이 현재까지도 남북방송교류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이로 인하여,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북한 취재방문에서 기대한 것만큼의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례도 있으며 소재 제한의 문제점도 있다.
참고문헌
박병석 : 남북한 사회문화교류의 현황과 전망, 아태평화재단, 1995
양문수 : 현 단계 남북경제교류협력의 쟁점과 과제, 북한연구학회, 2005
조은석 외 : 남북한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적 개선방안 연구, 통일연구원, 2000
조한범 : 남북 사회 문화 교류 협력 정체와 확대 방안, 현대경제연구원, 2009
한상완 : 남북한 문화교류를 위한 도서관과 학술정보 교류 협력, 방안국회도서관, 2000
KBS 남북교류협력기획단 : 북한 취재·제작 핸드북, KBS 한국방송공사, 2001
  • 가격7,5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3.07.22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6401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