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 한일 양국 입장 중심, [임나일본부, 일본 임나일본부설 근거와 비판, 임나일본부에 관한 한일 학계 학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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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나일본부설, 한일 양국 입장 중심, [임나일본부, 일본 임나일본부설 근거와 비판, 임나일본부에 관한 한일 학계 학설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란?
3.일본 임나일본부설의 근거와 비판
4.임나일본부에 관한 한․ 일 학계 학설들
5.임나일본부의 실체
6.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군을 멸망시켰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제 민족의 질서가 이완되면서 야마토 조정도 이에 대응해 (한)반도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고구려는 반도 남부의 신라와 백제를 압박했다. 백제는 야마토 조정에 구원을 요청했다. 일본 열도인들은 원래 철 자원을 구해 조선반도 남부와 교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4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은 바다를 건너 조선에 출병했다. 야마토 조정은 반도 남부의 임나(가라)라는 땅에 세력권을 차지했다. 뒤에 일본 역사서는 거기 설치된 우리나라 거점을 임나일본부라고 불렀다.(37쪽)
▶ 임나일본부 멸망과 삼국의 일본 조공=538년에 백제 성명왕(성왕)은 불상과 경전을 일본에 헌상했다. 백제로부터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자가 (일본)열도에 줄지어 왔다. 그러나 562년 임나는 신라영토가 됐다. 570년 이후가 되면 동아시아 일대에 그때까지 여러 나라 움직임을 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사태가 발생했다. 고구려가 돌연 야마토 조정에 접근해와 조공을 한 것이다. 이어서 신라도 백제도 마찬가지로 조공했다. 3국이 서로 견제한 결과였다. 그 뒤 589년에 중국대륙에서 수가 통일을 이룩했다. 이것이 새로운 위협이 돼 3국은 더욱 일본에 접근했다.(40쪽)
이러한 일본인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며, 우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혀야한다.
3)한국의 대응과 방향
‘임나일본부’의 연구를 확실히 뒷받침해줄 고대서들은 거의 일제침략기에 일본에 의하여 불태워졌다. 그들은 광개토왕비와 칠지도의 명문을 삭제조작하고, 「일본서기」를 재정리하며 여기저기의 사료들을 붙여 논리를 펴고 있다.
만약 이 임나일본부설이 정설이 된다면 앞에서 말한 일본의 의도대로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은 그들의 땅을 되찾기 위한 정당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사료의 일부분만을 확대 해석하여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이나 배경은 뒷전으로 하는 역사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이런 역사는 정확성면에서도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화된 조작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바로 세워 나가야한다.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민족주의적 감정의 차원에서 무조건적 거부만 할 것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과 지식으로 차근차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역사교과서 역시 바꿔야 한다.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 정설이 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이 우리나라 교과서에선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건 경쟁면에서도 뒤지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알아야 반박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국사교과서의 맨 첫 장 랑케의 말처럼 역사는 사실에 대한 탐구다. 역사는 분명히 당시의 사실을 정확히 고찰해 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또한 거기에 역사가의 해석이 덧붙여져야 현재와 대화하는 살아있는 역사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되새기며 한국학자들 역시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6.결론
사실 ‘임나일본부설’을 조사하기전까지 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가끔 TV에서 듣 던대로 일본교과서 왜곡 중 ‘일본이 삼국 때 우리나라를 지배했다는 설이다.’ 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를 조사하면서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선 60%이상이 아예 듣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으며, 인터넷 ‘한민족 까페’란 곳에서조차 간략히 어느 부분정도만 알 정도였다.
일본교과서를 한번보고 싶어 찾아간 국회도서관에선 일본의 교과서 내용을 보여주며 일본의 대부분 학생들이 이처럼 알고 있다는 점에선 나의 무지함이 답답하기 조차했다. 그래도 국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도 제대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하지만 나의 지식정도와는 다르게 ‘임나일본부설’을 다룬 내용은 무척이나 많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그동안 관심도, 지식도 부족했던 점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하기도 했다. 일본은 ‘국화와 칼’에서처럼 이중적인, 가끔 독도문제와 종군위안부에 대해 망언을 일삼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란 생각이 든다. TV 드라마 속에선 일본인들이 비열하고 악의 가득 차게 자주 등장하고, 국사시간엔 민족의 정기를 끊는다하여 곳곳의 산하에 박아 놓은 쇠말뚝, 창씨개명의 강요, 문화재 유출과 훼손을 일삼는다. 하지만 마음만큼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따라가 주질 못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그에 대해 분통해할 뿐이지 해결방법과 대응은 생각지 않는 편이다.
‘임나일본부설’만해도 4~5세기의 가야 및 일본의 역사상은 불분명한 점이 많이 있고, 이런 문제는 앞으로 계속적인 연구와 학술 발굴 및 과학적인 연구 방법의 개발 등에 의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또한 아직 불충분한 연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양국의 역사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서로 상이 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일본교과서에선 정설도 받아들이는 ‘임나일본부설’을 우리는 그에 대해 제대로 다루고 있지 조차 못하다는 것은 경쟁적인 면에서조차 뒤쳐지는 게 분명할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뭐라고 하면 이에 불끈해서 반박하는 자료를 찾기 시작하기보다는 미리 이에 대해 대응하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임나일본부 문제는 한국고대사의 복원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단순히 민족적 감정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정신에 의거하여 제대로 된 역사적 판단이 이루어졌음 한다.
-참고문헌-
1.김현구, 임나일본부연구 일조각(1993)
2.서영수 외,{광개토호태왕비연구 100년} 고구려연구회,1996
3.가야 흥망사 말송보화 길천홍문관(1977)
4.최재석, 일본고대사연구비판, 1990, 일지사
5.천관우, 가야사연구, 1991, 일조각
6.이병선, 임나일본과 대마도, 1987, 아세아문화사
7.김태식, 광개토왕릉 비문논쟁과 임나일본부설, 역사비평
8.김석형, 고대 한일관계사
9.이영식,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북한 역사학계의 입장
10.이영식 \"임나일본부는 왜의 통치기관이 아니다.\" 왜곡과 콤플렉스의 역사1 한일관계사 학회
11.황백현 \"일본교과서 한국역사 왜곡의 실체\" 국민독서운동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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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15
  • 저작시기2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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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97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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