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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이 바로 이것이다.
혁거세왕이 하늘로 올라간 뒤 그 뒤를 이어 남해왕[남해차차웅]이 즉위했다.
<참고문헌>
서정오,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신화, 현암사, 2003년
조셉 켐벨, 신화의 힘, 고려원, 2000년 Ⅰ. 신화의 개념
Ⅱ. 단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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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하여 장사를 지내려 하자 큰 뱀이 나타나 방해를 하
므로 머리와 사지를 제작기 장사지내어 5릉을 만들고 능의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하였다. 담엄사 북쪽의 능이 바로 이것이다. 태자 남해왕이 즉위하여 왕위를 계승하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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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혁거세)의 아들 남해왕이고 남해왕이 자신의 반란과 자신의 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혁거세 신화를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신화라는 것은 왕들이 자신이 잡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이하고 판타지적인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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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왕이 이를 보고 탈해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여겨 맏딸을 시집보냈다 함은 세력이 머무를 땅을 빼앗고, 신라왕이 탈해의 세력을 만만치 않다고 보아 회유하려 했다고 해석 할 수도 있다. 또한 탈해집단은 결국 신라의 왕위를 차지하게 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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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신)이 또 일러가로되 내 뼈를 東岳(동악)에 두라 하므로 (거기에) 奉安(봉안)케 하였다【혹은 이르되 (脫解:탈해)崩後(붕후) 二十七世(27세) 文虎(武)王〔문호(무)왕〕때, 調露二年(조로2년) 庚辰三月十五日(경진3월15일) 辛酉(신유)밤에 太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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