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와 법가사상'에 관한 종합적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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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비자와 법가사상'에 관한 종합적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A. 한비자의 생애

B. 법치의 이론적 근거
1) 사회역사관
2) 인성론

C. 법치의 내용
1) 법치설(法治說)
2) 술 (術)
3) 세(勢)와 세위(勢位)

D. 법가의 통치사상
1) 치도(治道)관
2) 치본(治本)관
3) 치술관

E. 한비자(韓非子)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사상에 그 뿌리를 둔 것이었다.
E. 한비자(韓非子)에 대한 평가
한비자의 정치철학의 긍정적 의미를 살펴보면, 먼저 객관적 정치규범으로 한비 이전의 정치철학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있다. 한비 정치철학의 효능은 실제정치의 운용에서 새로운 처방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즉 유묵도(儒墨道) 삼가는 생명의 가치사상(價値理想)에 있어서 우월성이 있고 지극히 높은 경지와 체계가 있으나 전국(戰國)같은 난세에 대처하기 위해서 꼭 실행해야 할 구체적 조치나, 능히 적용될 수 있는 운용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가에서는 인성의 본원을 발휘해야 한다는 성덕교(成德敎)가 되었고, 묵가는 천지(天志)를 본받고 표준으로 삼는 겸애주의가 되었으며, 도가는 자연에 돌아가는 무위(無爲)의 정치이상을 보여주었지만, 그러한 이상들은 결국 객관화와 제도화가 되지 못하였고, 그것이 객관적 정치체제와 정치국면이 되도록 다리를 놓고 추진할 수 없어서 끝내 현실 정치에 낙착되지는 못 했다. 즉 법이라는 매개를 통한 객관적 구조를 가지지 못했다. 한비자는 이러한 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둘째는, 법의 표준과 제도화, 세(勢)로써 통치 권력의 확보, 술(術)에 의한 통치방법의 모색을 통하여 정치를 도덕교화(道德敎化)의 영역에서 멀리 독립시켰다. 적어도 한비자는 정치를 도덕교화로부터 독립시켜 무엇이건 금할 수 있는 세와 인재 등용하여 그들의 공로를 평가하는 술의 운용은 하나의 국가를 강하게 할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봐야 한다.
한비자는 그의 정치철학에서 군주의 세를 강화하고 견고하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국토가 넓고 국사(國事)가 복잡한 전국시대에 군세가 강하지 못하고, 통치 권력의 통치 중심이 견실하지 못하면 법의 표준성도 확고하게 성립되지 못하고, 술의 치도(治道)를 실행시키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군세를 강고하게 함이 정치철학의 첫 번째 전제이다. 그러나 법(法)과 술(述)만을 유일무이의 방법으로 하는 한비자의 정치사상은 그 사상 자체에, 시행의 과정에서, 또 결과에 있어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점이 많다.
인간은 그 본성은 철두철미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성선설(性善說)과는 너무나 상반된 견해이다. 한비자의 성악설(性惡說)의 유래는 그의 스승인 筍子(순자)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전면적으로 인간을 불신하는 생각이다. 인의니 도덕이니 관용이니 온정이니 하는 것을 일고의 여지도 없이 배격하였으니 그것은 인간 사회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너무나 냉담하고 비정하고 서로의 감시와 적대의 냉전장(冷戰場)으로 보게 한다.
실상은 인간이란 반드시 그렇게 서로 노려보고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에서 알고 있다. 또 인간에게 본래부터 그러한 비정한 일면이 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선으로 유도하여 인간 사회를 따뜻한 것으로 만들어 살맛이 있게 하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정치가 존재하고 지도자가 필요하고 교화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비의 정치사상은 어떻게 하면 군주의 지배를 완벽하게 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국민 생활을 따뜻하고 행복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포기한 것이 된다. 국민의 참마음에서 나오는 협력을 기대하지 않고 힘만을 편중하고 마음의 소중한 것을 살피지 않는 정치라고 하겠다. 이 점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힘만의 정치는 오래 유지 못하다. 진(秦)의 왕이었던 정(政)은 한비의 정치사상을 채용하여 한때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천하를 힘으로 통일하여 천자가 되었었다. 그는 저 유명한 진시황이 되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감행하고, 냉혹하고 까다로운 법을 세웠으며,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그러나 진나라의 명운은 짧았다.
종래에는 『한비자』에서 가혹한 벌의 시행을 주장함으로서 인간성이 무시된다고 하여 악서(惡書)라는 지적을 받아 금기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2천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대부분의 정치사상이 겉으로는 유가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과 체제는 실로 법가적 요소가 많았다. 즉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구조였다는 점이 이것이다.
그것은 도덕이나 인의 권장하고 칭찬할 일이기는 하나 그것은 마음에 속한 일이고 선행에 속한 일이니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인간의 공동생활을 가누어 나가는 데에는 일정한 질서가 없을 수 없다. 서로가 공동으로 지켜야만 할 일들이 많다. 그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는 자에게 지키도록 강요해야 할 일정한 표준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법이다. 법이 없이 국가와 사회의 질서는 상상할 수 없다. 이 국가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비록 치우친 점은 있었으나 한비가 법을 주장한 것은 역시 현명하였던 것이다.
또 한비가 인간의 본성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보편적 정서에 미루어 볼 때 유감이기는 하나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선인지 악인지, 백지상태 인지 단언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이 본성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실지로 그러한 점이 있는 것은 있는 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성이 그렇게 악하기만 하다고 우리는 보지 않는다. 사람의 심리를 살피는 눈이 비정하게 예리하다. 그러나 그의 설은 항상 치우친다. 한비자는 자신의 사상에 굳은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혹은 그의 불우한 환경 때문일까 우리는 법의 사상을 외친 한비자의 현명을 존경하면서도 한비자의 숱한 많은 단점에는 비판의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1. 『중국사상사』 삼삼식삼랑
2. 『춘추전국시대의 법치사상과 세 술』, 이춘식, 아카넷 2002
3. 『쉽게읽는 중국사상』안길환, 책만드는 집, 1997
4. 『중국고전학입문』양계초, 형성사, 1995
5. 『중국 고대철학의 이해』,이강수, (주)지식산업사, 1999
6. 『중국철학사』, 풍우란 , 형설출판사, 1989
7. 『덕치, 인치, 법치』, 신동준, 예문서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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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5.12
  • 저작시기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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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49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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