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문학과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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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육사의 문학과 작품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시대상황
2)육사의 삶

II. 저항시인
2. 이육사의 저항의식
1)비극적 현실인식
2)고향상실과 회복의지.
3. 상징적인 시어.

III. 이육사의 시 감상

IV. 결론.

본문내용

는 군수야업(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사막의 행상대(行商隊)도 마음을 축여라
화전(火田)에 돌을 줍는 백성들도 옥야천리(沃野千里)를 차지하자
다같이 제멋에 알맞는 풍양(豊穰)한 지구의 주재자(主宰者)로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지구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위에
모든 생산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보자
앵속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찬연(餐宴)엔
예의에 끄림없는 반취(半醉)의 노래라도 불러 보자
염리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神)이란 항상 거룩합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이민들의 그 틈에 안 끼여 갈 테니
새로운 지구엔 단죄 없는 노래를 진주처럼 흩이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 모든 별을 노래하자
설움밖에 없는 낡은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이 가져야 할 동방의 아름다운 큰 별, 숱한 별들 중에 오직 꼭 하나인 유일한 별의 함축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쁜 노래이며 생산의 씨이자 찬란한 열매로 표상되는 생명회복에 대한 신념과 희망이다. 멸망하는 겨레 또는 호수 속 깊이 거꾸러진 교목의 쓸쓸한 그림자로 비유된 쇠락한 조선정신이 나아가야할 지표로서 육사의 별은 존재한다. 이 별은 육사의 시가 표방하는 집단주의 정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곧 한 개의 지구이며 운명공동체이다. 별은 또한 닭 우는 소리 들리는 새벽을 기다리는 화자의 내면적 지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별은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고 있는 광야의 신 새벽을 알려주는 예시인 것이다.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씨가 가지는 상징성을 보면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이 소망하는 노래의 씨를 광야에 뿌려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겠다는 의지가 표출된다.
까마득한 날은 우리 민족의 시원성을 말해주며 모든 산맥들조차 차마 범하지 못한 이곳은 우리 국토의 공간적 신성성을 말해준다. 거기에 역사는 큰 강물로 흘러왔으나 눈 내리는 겨울로 상징된 상황은 강물조차 얼어붙게 하는 잔혹한 시련으로 역사의 흐름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눈 속에서도 매화향기 아득하게 처져 민족 생명의 근원과 그 끈질긴 저력을 알리고 훗날 꽃으로 만개할 씨를 뿌림으로서 미래의 희망을 확신한다. 육사는 씨를 뿌리는 행위를 통해 황혼이나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서 막연한 기대감을 탈피하고 염원이 현실로 이루어지리라는 확고한 기대로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를 초인을 기다리고 있다. 씨는 소생할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영속을 위한 가장 고귀한 결정체이다. 따라서 광야에서 노래하는 씨는 단절되려는 시대의 이음을 위한 시인의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씨를 뿌려라,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에서 보이는 뿌려라 하리라는 황혼의 보내게 해다오, 맡겨다오 의 유약한 청원과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서의 ~하자 조의 청유와는 다른 , 시인자신의 내면적 힘을 느끼게 하는 강건함이 있다. 이런 종결어미의 변화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시에 나타난 씨는 미래의 만개할 꽃을 위한 의지적 희망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광야> 라는 작품을 보면 민족독립을 위한 시로 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육사 시인의 전기를 배제 할 수 없다면 참고서적에 나온 해석에 따라가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백마 타고 오는 초인” 이라면 이육사 시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독립운동가, 위대한 민족시인을 상징했을 것이다. 사람마다, 시대마다 생각하는 초인은 다르지 않을까. 지금 부모님이나 친구, 선생님들이 나에게 필요한 초인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린’ 때부터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 때까지 <광야>에 드러냈으니 ‘다시 천고의 뒤’에도 나타 날 수 있는 이육사 시인을 보면 민족과 독립을 분리해서 볼 수 없고 그것은 이육사 개인에게도 우리에게도 운명적인 한 시대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육사의 생애와 그를 에워싸고 있는 민족 현실을 무시한 체 그의 시를 읽는 일은 절반 밖에 시인을 이해하지 못함이 아닌가 싶다. 조선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극심한 고초를 견뎌냈고 또 수시로 중국을 드나들며 스스로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시인이기에 시를 쓰는 것조차 하나의 행동이었다. 시인이 꿈꾸고 기다린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우리도 알고 보면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IV 결론.
최소한 시라는 것이 한마디의 정의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시에 대해 정의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어떤 사람들의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이것이 시다, 문학이다 할 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시가 되는 것 같다. 한 작품을 놓고 설명한다는 것으로 그 작품이 다 설명 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작품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것은 곧 그 시대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래서 이육사 시인은 비록 시대를 선택 할 수는 없었지만 조국 독립운동을 선택했고 거기서 오는 비극과 절망뿐인 현실에서 느끼는 아픔이라든지 불안 이런 것들을 자신의 체험과 자신이 평소 생각한 신념, 의지로 조화시켜 하나의 시로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육사가 가지고 있었던 유교사상과 선비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지조는 조국 독립운동을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 본다. 문단의 어느 파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것은 그 만큼 자기 목소리를 내려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강인함으로 대표되는 시인의 분위기는 남성적 어조로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로 인해 정신적 자유조차 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일제치하에서 노예로 전락하느니 차라리 자유와 광복을 위해 저항 운동을 벌이다 죽겠다는 시인의 외향적 기질 때문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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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14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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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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