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노사관계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영국의 경제지표과 노사관계

• 고용관계 당사자

• 사용자와 그들의 조직

• 정부의 역할

• 고용관계의 과정

•영국노사관계의 변화

•영국의 노동운동

• 현재와 미래의 문제점

• 결 론

본문내용

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도 급속히 발전하여 R.오언 등의 지도로 34년 50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포함하는 전국노동조합대연합이 결성되었으나 방해와 재정궁핍 등으로 실패하였다. 또 32년에 제정된 신선거법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은 선거권 확장을 요구하며 차티스트운동이라는 폭력적 정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고, 44년 로치데일의 노동자 28명이 시작한 로치데일조합이라고 하는 소비협동조합운동도 노동운동의 유력한 일부가 되었다. 17세기 후반 점차 자본주의의 기초가 안정되어 감에 따라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이 발전하였는데, 51년 합동기계공조합을 선구로 토목공탄갱부방직공들 사이에 널리 퍼진 직업별노동조합이 그것이며,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용인하면서 숙련직공이 단결하여 자본가에 대하여 일정한 임금수준을 유지하려고 하는 운동으로서 오늘날의 노동조합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운동은 본능적자연발생적인 폭력운동에서 조직적계획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와 함께 사회주의 정당운동도 나타났다. 18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여 평화와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이상사회의 건설을 주장했던 공상적 사회주의는 본래 노동운동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으나, K.마르크스와 F.엥겔스가 양자를 결합하여 1847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을 전제로 하는 공산주의 동맹을 결성하고 이듬해 그 강령이라 할 수 있는 공산당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조직은 51년 해산되었다. 그 후 서유럽 제국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국제적 단결을 강화하기
위하여 64년 런던에서 제1인터내셔널을 결성하였고, 89년 파리에서 제2인터내셔널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내부 분열과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국가간의 대립으로 붕괴되었으며, 1919년에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제2인터내셔널을 재건하여 40년 와해될 때까지 공산주의를 모체로 하고 있던 제3인터내셔널과 대항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독일이탈리아에스파냐 등에서 파시즘이 대두되어 노동운동은 이들 국가 내에서 크게 제약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 후인 45년 파리에서 세계노동조합연맹이 결성되었으나 냉전의 격화에 따른 내부 분열로 서방 자유세계의 노동조합들이 탈퇴, 49년 런던에서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을 조직하여 세계노동조합연맹에 대항하게 되었으며,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거나 연립정부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노동운동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세력이 되었다.
현재와 미래의 문제점
현재 영국의 고용관계 형태는 1979~1997년까지의 보수당에 의한 정책에 의한 것으로 기존의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재형성되었다. 1980년대에는 재조업 고용 감소, 일부 서비스업 고용 창출된 시기로 83~84년 12%가 넘었다가 줄어서 97년에는 6%도 떨어졌다. 1980년대와 1990년의 정부정책은 기업문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자영업, 소기업의 창업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시도로 특징 지워진다. 대부분의 새로운 일자리는 노조화가 덜된 서비스산업에서 창출되었다. 여성취업과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대부분 이들은 단체교섭의 적용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질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비교국가에 비해 고용차별, 사회적 배제 및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성 및 인종문제가 보다 두드러진다. 사회적 긴장이 고조됨으로써 30%의 재정지출이 사회복지비로 지출되고 있으며 이는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부담이다. 앞으로는 1945~1970년의 평균 수준으로 실업률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며 비정규직의 비중의 줄어들 기미가 없으며 청년층 실업도 여전히 큰 문제이다.
인적자원관리 접근 방식을 사용함에 있어 영국의 사용자들은 고용관계에서 경영자 사고를 주입시키고 고용계약을 보다 개별화시키고자 시도한다. 간혹 HRM이 단체교섭제도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그들의 단체교섭권을 존중하고 고품질, 고임금, 고용의 증가와 부합하는 HRM전략에 는 반대하지 않는다. HRM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도 있다. 노조의 저항으로 이는 필요한 규제적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제도로서 향후 경제환경에서 경영층의 목적과 사업전략 그리고 영국 및 EU의 법제도에 의해 HRM의 운명은 상당부분 좌우될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영국과 EU의 관계는 갈등, 여론 및 정치적 의견의 반전, 가입조건의 재협상 그리고 가입유보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영국 고용관계의 유럽화에 대한 CBI의 초기부터의 확고한 반대는 1979년 이후 보수당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기업 차원에서의 많은 중, 대규모 기업에서 EU에서의 경제적, 재정적 이익을 인식하고 있다. 초기에는 TUC와 대부분의 노조는 EC가입을 반대하였으나 1983년에 노동당과 함께 지지자로 돌아섰다. 유럽의 관점에서는 기업수준의 단체교섭은 다국적 기업들이 노조를 거부하고 있으므로 큰 영향이 없다. 그러나 보수당 정부와 사용자단체는 작업장 협의회를 법적으로 강제한다는 원칙에 반대하고 있지만 영국의 일부 다국적 기업은 영국 공장의 근로자를 참여시킬 결정을 했다.
결 론
영국의 고용관계는 지금 전환점에 있는 복잡한 상황이다. 노조 조직률은 낮은 편이며 사용자단체는 고용관계에 있어서 권위를 대부분 상실했으며 일자리의 안정성도 떨어졌고 예측도 어렵다. 노동당의 집권으로 사회적 유럽과의 통합의 가속화, 근로자 권리의 추가적인 보장 및 노동시장의 사회적 재구축에 힘쓸 것이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최상층 대표단체는 유럽식의 대표권제도를 받아들여 용기있는 지도력 요구와 정치적 위험이 따른다. HRM은 사용자들을 위해 경제적 성과를 성취할 수 있는지 개별화된 근로자들은 만족시킬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배제 및 기업의 책임과 같은 고조되는 우려와 공존할 수 있는지도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조조직이 취약하여졌지만 노조는 여전히 건재하며 보다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다. 영국의 고용제도가 대부분의 당사자들이 변화를 수용할 태세와 능력이 있다는 것과 생존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0.05.13
  • 저작시기201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049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